나무위키 5.18 민주화운동 항목

https://namu.wiki/w/5.18%20%EB%AF%BC%EC%A3%BC%ED%99%94%EC%9A%B4%EB%8F%99


[20] 위 사진에서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꼬마 상주는 조천호(당시 5살), 그리고 영정 속 남자는 아버지 조사천(향년 34세)이다. 건축 일하던 조사천은 계엄군의 폭행에 분노해 시위에 동참했다가 5월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 집단 사살 도중 총상으로 숨졌다. 당시 그의 검시 조서에는 사인이 '카빈 총상'이라 적혀있어 5.18 왜곡 세력은 "조사천은 시민군에게 사살당했는데 5.18 단체가 계엄군 소행으로 뒤집어씌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 조 씨의 죽음을 현장에서 목격한 직장 동료들은 조 씨가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았다"라고 증언했으며, 피격당한 시각과 위치는 21일 오후 2시경 도청 앞이었다 (5.18기념재단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1권, 한얼미디어 2006., 312쪽). 이때는 계엄군이 도청 앞에서 무차별 조준 사격하고 있었던 시점이며, 시민군이 금남로에 무장하고 나타나기 전이었다(시민군 등장 시각은 오후 3시). 뿐만 아니라 당시 계엄군 중 특전사 공수부대 말고 일반 보병사단 군인들은 M16이 아닌 카빈을 사용했다. 설령 조 씨가 카빈에 사망했다 한들 이는 조 씨가 보병 계엄군이 쏜 총에 맞고 사망했을 새로운 가능성을 암시한다. 실제로 21일 도청 앞 집단 사살 당시 현장에는 31사단 군인들도 있었다(김영택 《5월 18일, 광주》, 역사공간 2010., 374쪽). 따라서 M16이든 카빈이든 관련 없이 여러 정황을 볼 때, 조사천 씨는 '계엄군'이 쏜 총에 맞고 사망한 것이 분명하다.




[21] 이 사진은 미국의 모 외신 기자가 몰래 찍어 독일의 슈피겔지에 실린 후 5.18의 상징이 되었다. 한편 조천호는 훗날 "어렴풋하지만 당시엔 슬프기보다 배고팠어요. 너무 배가 고파서 힘이 없었습니다. 지쳐서 영정 사진에 기대 있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술회했다. 이후 조천호는 이런 엄청난 비극을 가까스로 이겨내고 친척의 도움으로 조선대학교 이공대학 건축설비과 졸업 후 제대한 뒤 5·18 묘역 관리소에서 5년 정도 근무하다 혼인 후 7급 공무원 특채(국가유공자)로 들어가 광주시청에서 지금까지 10년 이상 일하고 있다. 7급 주사보부터 시작해 현재는 4급 서기관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결혼해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22] 위 사진에 등장하는 장소는 순서대로 연세대학교 학생회관과 금남로이다. 4번째 사진의 시민군의 신원은 40년 가까이 신원 미상이었다가, 2019년이 되어서야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 제작팀의 취재로 계엄군에 의해 사망한 시민군이었음이 알려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록도 없이 학살을 당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해당 사진은 극우 학자 지만원이 5.18 광수를 주장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된 사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나의 생각

계엄군이 M-1 카빈 소총을 썼다는 증거는?



덧글

  • 과객b 2021/05/12 21:27 # 삭제 답글

    무한 확장 Endless story..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만연체로 간다
  • 광주폭동론 2021/05/13 00:20 # 답글

    저런 식의 주장이라면 폭도들도 M16을 가지고 있었으니 M16에 의한 사망도 폭동에 의한 것이 될 수 있겠군요.
    http://qindex.info/i.php?x=9349
  • 광주폭동론 2021/05/13 00:28 # 답글

    광주사태와 관련해서 의문나는 게 하나 있는데, 지역감정에 의해 일어난 폭동이라는 미국외교전문을 뒷받침하는 아래 증언들에 대해 왜 검증은 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는가하는 점입니다.
    http://qindex.info/i.php?x=3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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