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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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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피난 당시 방송국을 비롯한 현장의 상황[편집]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방송 당시 상황은 지난 50년간 한국 방송 역사의 산 증인인 이장춘 한국방송인동우회 이사가 직접 관리하는 블로그 글에 수록된 당시 대전 방송국에서 6·27 특별방송을 내보낸 담당책임자 유병은의 회고를 옮긴 것이다. 그는 청원방송박물관을 설립했으며 2009년 8월 24일 작고했다. 다만 해당 블로그에서는 27일 9시 이승만 대통령이 의정부를 탈환했으며, 서울 시민들은 안심하라는 방송을 했다고 증언하나 2. 기만방송에서 말한 다른 자료들은 27일 9시 담화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의정부 방어가 실패했음을 인정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더 자세하게 보고 싶다면 관련 링크 참조.[11]

1950년 6월 27일 이승만이 막 대전에 도착할 무렵, 당시 갓 부임한 이범구 대전 방송국장은 서울 집에 가고 없어서 당시 대전 방송국 방송과장 유병은이 사실상 방송국장 직무대리를 하고 있었다.

이 날 오후 7시 반 경 갑자기 초대형 고급승용차가 대전 방송국 정문으로 들어와서 유병은 방송국장 대리가 나가보니 이승만의 지시를 받고 온 헌병사령관 장흥 대령이 유병은을 급히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갔다. 유병은은 무슨 일로 어디로 가느냐 물었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고 장흥을 따라 어디선가 내리니 그곳은 충청남도 도지사 사택이었고 당시 충남지사였던 이영진이 현관에서 마중나와 있었다.

그 뒤 응접실로 안내되어 들어가니 이승만이 프란체스카와 선 채로 귓속말을 하고 있었고 잠시 뒤 이승만은 장흥에게 출입문을 잠그도록 지시했으며 장흥은 문을 잠근 뒤 권총을 손에 쥐고 유병은을 협박하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이승만은 유병은이 방송국 책임자인 지 확인한 뒤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지적


장흥은 1949년 6월까지 헌병사령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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