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위키 바오다이 항목

 3.2. 부정적[편집]
위에 나온 사치야 확실히 비난받을 점이긴 하다. 1952년 미국에선 바오다이가 1년에 500만 달러 가까이를 홀로 쓰고 있으며 스위스 및 프랑스 은행에 상당수 돈을 숨기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당시 베트남 국가예산 5%에 달했던 거액이다. 미국 카투니스트이던 알 허시펠드(Al hirschfeld/1903~2003)는 1947년 바오 다이를 홍콩에서 만났는데 "거만한 돼지가 된 황제."라면서 만화로도 깠다.

파일:external/i780.photobucket.com/4665478774_6bcc7a8336_o1-1.jpg
빙쑤옌의 보스 '바이비옌(Bảy Viễn)' 레반비옌(Lê Văn Viễn, 黎文園) 겉보기엔 멀쩡하게 생겼다.

그밖에도 큰 비난거리 중 하나가 조직폭력배이자 정치깡패 세력인 빙쑤옌(Bình Xuyên, 平川)을 휘하 부대로 둔 점이다. 그야말로 이득을 위해서라면 친프랑스, 친일반민족행위자도 된 빙쑤옌은 악명을 떨쳤는데 일본의 베트남 침공 당시 친일파가 되어서 항일 베트남인들을 가혹하게 학살하고, 그 식솔 및 마을 사람까지 팔다리를 잘라버린 일까지 저질렀다. 그런데 빙쑤옌은 정작 일본군이 베트남에서 물러날 기미를 보이자 이번엔 정반대로 친일파 베트남인들을 돌아다니며 죽여버렸고 그 식솔들 팔다리를 잘랐다. 즉 기회주의자. 그러나 자신의 편이 없다고 할 변명이 있을지 몰라도 그 바오다이가 빙쑤옌 보스이던 바이 비옌[4]을 친위대장으로 임명하고 대장 계급을 쥐었던 점은 두고두고 비난거리. 이게 응오딘지엠 탓이라고 하는 이도 있으나 되려 그 응오딘지엠이 이걸 반대했었다. 그 지엠조차도 빙쑤옌을 세균덩어리라고 멸칭할 정도였으며 민중들에게 어떤 반응을 받았는지 알만했다.

참고로 응오딘지엠은 바오다이 황제가 퇴위하자마자 빙쑤옌을 군대로 뭉개버렸다. 빙쑤옌은 그냥 조직폭력배나 정치깡패의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의 군벌 세력이나 다름없었기에 경찰로 뿌리뽑을 수 없었던 걸 지엠이 알았던 거였다. 참고로 빙쑤옌 소탕전은 거의 내전세력 소탕과 똑같을 정도였는데 기관총은 기본이고 박격포에 일부 빙쑤옌은 남베트남군에 대포로 응전할 정도였다. 그래도 결국 빙쑤옌 다수를 뭉개면서 간부들을 공개 총살시켜버리며 거의 뿌리를 뽑았다. 바이비옌은 프랑스로 튀어서 살다가, 1971년에 천수를 누리고 뒈지셨는데, 참고로 1956년, 남베트남 법원은 궐석 재판으로 그에게 사형을 언도했고 파리에서 몇 번이나 암살을 당할 뻔했는데 갱조직 문제로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빙쑤옌을 미국도 안 좋게 봤기에 거기를 뭉갤 때 미국에서 격찬하며 지지했다. 반대로 빙쑤옌 일로 바오다이는 더더욱 욕을 처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부터 허수아비로 자라나서 저렇다는 변명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로 치자면 순종이 저런 짓을 묵인해주는 상황을 대입한다면 이해해 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빙쑤엔은 한 가지로만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빙쑤옌과 응오딘지엠의 싸움은 프랑스와 미국의 대리전이라고 볼 수도 있었으며, 빙쑤엔은 프랑스군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5] 빙쑤엔의 패배로 프랑스는 완전히 베트남과 손을 끊게 되었고 남베트남은 미국의 책임이 되었으며, 빙쑤옌이 사라진 후 사이공에 베트콩들이 득실거리게 된 것으로 보면 그들이 비록 악했지만 그 시절에는 나름 필요악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와 별개로 혹자는 비슷한 시기 이웃나라 캄보디아의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과 대조하기도 한다. 바오다이나 시아누크나 무능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시아누크는 왕조와 상극인 크메르루주와 제휴하면서까지 권력을 쟁취하려 한 끝에 복위에 성공했던 것과 반대로 바오다이는 누군가가 떠먹여주기만을 바라다 (즉 권력의지가 없었다) 객사했다는 것.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