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33853&CMPT_CD=P0001
그러나 시어머니에게 고자질했다는 꼬투리를 잡은 남편은 집으로 돌아와 더 큰소리를 지르며 때렸다. 무섭고 두려웠던 초은이는 임신한 배를 때리려는 남편에게 부엌칼을 꺼내들고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남편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칼을 빼앗으려 덤벼들었다. 초은은 남편과 함께 넘어지면서 들고 있던 칼로 남편 옆구리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남편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5일 뒤에 숨을 거두고 말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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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국으로 시집오기로 마음을 굳힌 것은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함이요, 가난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함이었다. 셋째 딸인 초은이는 엄마와 동생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한국으로 시집왔다. 그런데 다시 그 가난한 과거로 돌아가게 됐고, 어린 딸까지 양육해야 하는 고통을 지게 됐으니 그의 마음은 어두울 것이다. 한국에 오면 가난에서 벗어나 행복할 줄 알았는데 살인자가 됐다. 그리고 양육비 한 푼 받을 수 없는 딸까지 딸리게 되었으니 그의 마음이 무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https://news.v.daum.net/v/20100802103629814?f=o
파트 경비실에서 시댁에 전화를 했지만 시어머니는 시간이 늦었으니 일단 자라고 달랬다. 초은 씨가 도움을 청한 게 그날만은 아니었다. 남편이 초은 씨의 배를 가격했다. 뱃속에선 윤하가 3개월째 자라고 있었다. 그녀는 칼을 집었다. 또다시 옆구리를 차려는 남편에 맞섰다. 남편의 복부에 칼이 꽂혔다. 병원으로 이송된 지 4일 만에 김씨는 죽었다. 남편이 회복 중이라고 알던 초은 씨는 유치장에서 사망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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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은 씨를 두고 재판이 진행 중일 때도 그랬다. 시부모와 형은 합의를 원했다. 아들이, 동생이 죽었지만 그 아들과 동생의 아이를 갖고 있는 며느리였고 제수였다. 평소 남편 김씨와 각별했던 시누이는 초은 씨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맞섰다. 여성단체들이 구명운동을 펼쳤다. 김씨가 평소에도 술을 마시면 폭행을 저질렀고, 아이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다는 정황을 호소하며 서명운동을 벌였다. 검사는 10년형을 주장했지만 초은 씨는 징역 4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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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여자교도소 1번 면회실에서 초은 씨를 만나던 시각. 옆방 2번 면회실에서 몽골 출신 에르헴체첵 씨(33)가 같은 몽골인 바이갈 씨(37)를 만나고 있었다. 바이갈 씨도 6년여 지속된 결혼생활 동안 본국으로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속에 살았다. 2006년 3월 회식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남편과 말다툼을 벌이던 그녀는 몸싸움 끝에 결국 남편을 살해했다. 동네 사람들이 신고해 경찰이 출동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바이갈 씨 부부는 운영하던 중국집이 잘 안 되면서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었다.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몽골로 돌려 보내겠다"라고 협박하던 남편 때문에 심리적인 압박이 심했다. 손찌검도 동반됐다고 한다.
실제 판결문
과잉방어
나의 생각
저 언론에서는 외국인 신부들을 순박한 사람인것처럼 편집하는데
세상에는 불리한건 절대 편집하는 사람들이 제일 위험하다
나중에 그들이 재범이라도 저지르면 책임을 절대 안지기 때문이다
1줄 요약
약자에 대한 배려를 외치는 사람은 위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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