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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김구암살 음모론 : 고정훈편







김구 암살 음모론 : 고정훈.History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read_pdf.jsp?PDF=19600524203&Y=1960&M=05

(짤방1-유료-)

http://www.history.go.kr/url.jsp?ID=NIKH.DB-np_da_1960_07_27_0230

(짤방2)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60300329101017&edtNo=3&printCount=1&publishDate=1960-06-03&officeId=00032&pageNo=1&printNo=4364&publishType=00010

김구(김구),죽산 암살의 진상을 규명사대당서 호소(1960년 6월 3일 경향신문)

사회대중당(가칭)은 2일 하오 조봉암씨 처형사건과 고(故) 김구 선생 암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호소문을 행정,입법,사법등 3부에 보내어 이에 대한 당국의 조속한 조치를 촉구했다.

동(같은) 호소문의 내용에 의하면, 앞서 사회혁신당의 고정훈씨가 폭로한 사실 과거의 같으며 이러한 사건이 이정권(이승만 정권)하에 꾸며진 모의였다고 지적하였다. 호소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위 동해안 반란 사건,김성주 사건(원용덕이 김성주를 처형),수십개 사건에 조씨(조봉암)를 관련시켜 그를 제거하려고 하였으며 그 대표적인것은 정우갑,박정호 사건등이다. 그러나 이에 실패한 이승만 정권은 91년 정월 초순(4291년= 1958년)부터

합법적인 진보당의 정강정책과 평화통일을 문제삼아 조씨를 비롯한 당간부를 체포,고문에 의하여 북한 괴뢰와의 접선설을 조작하려했다. 양명산을 회유하여 양명산과 조봉암씨가 간첩활동을 한것처럼 조작하였고

1심 판결에서 이것이 불인정되자,양으로 하여금 2심에서 진술을 완전번복케 하고 드디어는 대법원에서 사형언도를 내리게끔 하였다.

조봉암씨에 대한 재심기각 판결은 그의 담당변호사인 신태악씨에게만 통지하고, 다음날 불과 17시간만에 재판사상 유례가 없는 속도로 그 형을 집행하였던 것이다.

김구 선생 암살사건도 초기에는 그 하수인만 처벌하였으며 그 배후 조종자를 규명치않았음은 물론 하수인을 곧 석방하여 군요직에 등용하였다.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52500329203016&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60-05-25&officeId=00032&pageNo=3&printNo=4355&publishType=00020

자숙치않으면 사변전(6.25이전을 의미)의 일까지 폭로하겠다. 해공선생제거 획책(1960년 5월 25일 경향신문)

구국청년단 표(대표인듯) 고정훈씨는 25일 상오 통일당의 김준연씨가 자기를 상대로하여 명예훼손죄로 당국에 고소를 제기했다는데 대해 기꺼이 응하겠다고 전제하면서 "

그러나 만일 김씨가 자숙자중하지 않고,함부로 날뛰는 태도로 나온다면 6.25사변 이전의 일까지 모두 퍼뜨리고 발할 작정이다."이라고 말하여 주목을 끌었다. 김씨에 관한 6.25사변전의 일은 그의 금후 태도 여하에 따라 폭로하겠다고 말한

고씨는 "김씨는 인도 뉴델리 사건(신익희와 조소앙의 밀회 운운)을 허위날조한 김지웅씨를 심복으로 삼고있으며,그당시 김준연은 김지웅과 공동음모하여 신익희씨의 제거를 획책했던것."이라고 말한 다음 "김지웅이라는 사람은 그 당시 조봉암씨와 이형근(그당시 육군대장)씨 일설에 의하면

민주당의 대표최고위원인 장면씨까지 끌어넣어 이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려했다는 허위모략을 꾸민 사실이 있음(동해안 반란사건)을 시사하면서 한때는 장면씨까지 제거하려는 어마어마한 모의를 했다고 말했다. 고씨는 이어 "

김지웅씨는 전기 음모를 꾸민 모의 사건을 그 당시 국회에 제출한바 있을것이며, 김준연은 그 허위의 날조음모에 입각하여 검찰에 알린사실까지 있는것으로 듣고있다. 이것은 아마 그당시 국회 속기록에 있을것이다.

또한 김지웅이란 사람은 고(故) 김성주씨 고문 치사사건을 날조음모한 장본인인것이다. 그 당시 김지웅씨는 치안국장이었던 문봉제씨에게 허위 정보를 제공하여 전기 김씨를 고문치사케한것이다. 이러한 김지웅씨를 심복으로

삼고있는 김준연씨의 배후 흑막은 오래지 않아서 백일천하에 공개될것으로 안다. 김준연씨는 김지웅씨가 애국자이나 훌륭한 동지라고 항시 자랑하고 다녔으며 동해안 사건문제를 빨리 처리해줄것을 검찰에 종용한바 있었다.

조봉암씨 사건에 관련된 고문관 및 엄숙지씨등은 조씨의 사형이 확장되었을때 모모 다방을 다니며 "아슬아슬하게 일이 되었다."는 자랑비슷한 말을 하고 다닌 사실이 모모육군 장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전기 엄숙진씨에게는 그당시 수고했다고 이기붕씨의 지시에 의해 불광동의 시장조합자리를 임홍순씨가 제공한바 있다 이 모든 사실로 보아 김준연씨의 배후는 알수있을것이다"라고 덧붙였다.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5250032910302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60-05-25&officeId=00032&pageNo=3&printNo=4355&publishType=00010

제시할 증거있다(1960년 5월 25일 경향신문)

위대한 애국자 김구 (김구)선생과 혁신운동의 선구자 조봉암씨를 암살시킨 장본인은 이승만 박사와 그의 부하들이었다....고 폭탄적인 폭로발언을 한 구국청년당 대표 고정훈씨는 24일 하오 "전기(아까) 살인귀들을 검찰에 고발하기위해 많은 애국적인 변호사가 동원될것이며 살인 음모자들의 범죄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사진,증인)도 가지고 있다."고 말하였다.

또한 고정훈씨는 김구 선생 살해음모에는 전 국방장관 신성모(4.19때 뇌출혈로 사망),유엔 주재 한국대사 임병직씨가 관련되어있으며 조봉암 살해음모에는 현 민의원 김준연씨도 관계가 있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이 사실을 폭로하고 난 고정훈씨는 "이 음모에 가담한 살인귀를 그냥둘수있겠느냐"라고 흥분된 말씨로 반문하였다.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52800329203005&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60-05-28&officeId=00032&pageNo=3&printNo=4358&publishType=00020

고씨를 고발 암살관련없다 임병직씨의 말(1960년 5월 28일)

유엔 본부 27일 발동화 = 유엔 주재 한국상임대표인 임병진 댁사는 27일 그가 1949년 6월 김구 선생암살사건에 관련이 있다고 시사한 서울발신보도를 "어리석고 당치도 않고 무관한것이다."라고 일축하였다. 임병직씨는 "내가 그 사건에 관련이 있다는 보도는 청천벽력과 같은 것이며, 만약 내가 서울에 있다면 나는 그와 같이 무책임한 말을 한 그(고정훈)에 대하여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고 말하였다.

임씨는 고정훈의 비난이 이승만 박사와 가까운 모든 사람을 쫓아내려는 정치적 음모라고 말하였다. 암살하수인 안두희를 아느냐는 질문에 임씨는 "그를 만난 일이 전연 없으며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답변하였다.

반전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72700209103001&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60-07-27&officeId=00020&pageNo=3&printNo=11800&publishType=00010

핵심없는 폭로만 되풀이 1960년 7월 27일

고정훈 사건의 첫공판. 핵심없는 폭로만 되풀이. 김창룡 중장이 나를 빨갱이로 조작,없애라는 가만 싸인도 보았다.

가칭'사회혁신당'(전 구국청년단)대표 고정훈에 대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공무집행방해. 등 피고 사건의 첫공판은 26일 상오 10시 40분부터 서울지법 7호 법정에서 개정되었다. 인정심문에 이어 재판장은 즉시 소위 조봉암 사건진상 폭로를 한 고정훈의 정보입수경위를 심문하였는데, 고정훈은 곧 "김창룡은 신익희,조봉암을 공산당으로 몰아 잡아죽이려고 했다." "장면씨를 국제공산당으로 몰고 최능진을 죽인것은 모두가 조작한것이다."

"내가 조봉암과 손떼면 김창룡은 박찬일을 통해 이박사한테 얘기해서 나를 불란서 공사를 시켜준다고 했다."

"공산당이니 없애라"는 결재서류에 만(晩)자 싸인이 있는것을 보았다."

"정국은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다."는 등등

어마어마한 폭로진술을 늘어놓았으나,

고정훈 자신의 피고 사실에 대하여는 핵심을 잃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진술을 되풀이하여 재판장에게 수없이 핀잔을 받기도 했다.

고정훈은 소위 조봉암 사건의 진상을 자기가 지난 5월 내외기자단에게 폭로한데 대하여 그의 정보 입수경위라는것을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이날 상오 공판은 낮 0시 40분 휴정에 들어갔다.

"6년전 내가 '코리안 리퍼블릭' 편집국장으로 있을때 김창룡은 내가 조봉암을 도운 까닭에 나를 간첩이나 국제공산당으로 몰려고 했다.

김창룡은 내 운전수를 종로서 유치장에 구타,실신케 한후 주머니에 위조미군표를 넣어 사진을 찍고 미군첩보기관에 주었으나 미군측에서 직접 수사하겠다고 해서 좌절되었다. 김창룡은 또한 내가 불온문서를 살포하는 동시에 쿠데타를 일으킨다고 조작하려고 했다

57년 봄 김창룡(김창룡은 1956년에 사망)이가 나를 찾아와 "조봉암하고 손을 뗐느냐? 뗐으면 박찬일을 통해 이승만 박사한테 얘기해서 불란서 주재 공사를 시켜줄테다."하고는 신익희,조봉암이가 우리나라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한다. 당신은 협력해달라."고 하였다.

그후 김창룡을 찾아갔더니 "신익희가 조소앙과 만난 곳은 뉴델리가 아니라 향항(香港)이다. 사진찍은 증거도 있다. 신익희는 조봉암과 연락하고 국가전복을 기도하고 있으며 외국 연락은 신익희의 아들이 도맡고 있다. 그냥 둘수없다, 협력하라"고 말했다.

이어 고정훈 피고는 "사실이라면 내손으로 해치우겠다. 당신 김창룡의 손을 빌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창룡은 최능진을 죽이듯 또는 장면을 국제공산당으로 몰듯이하면 된다. 조작하면 당신이 재미없을걸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후 또다시 김창룡의 사무실에서 만난 즉 "내가 손대서 실패한 일이 없다."하길래 "뉴델리 사건은 김준연과 짜서 한것일텐데 또 이런 조작을 하는 것이 아뇨?" 한즉 김창룡은 "마음대로 하쇼, 당신(고정훈)도 잡아넣겠소."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더니 결재서류같은 것을 슬쩍 꺼내보이고 사람 이름자를 가리고는 "공산당이니 없애라."는 글자와 만(이승만 박사 싸인)자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김창룡은 그의 부하인 김종만 중령을 통해 3만환이 든 봉투를 나에게 주었다. 또 장복성 중령과 통해서 앞으로는 3~40만환을 준다고 했다.

그후 또다시 옥인동에 있는 특무대 본부에서 김창룡을 만났는데 그전까지도 고선생하고 나를 부르던 김창룡은 이날따라, "고정훈 각오했어."라고 대뜸 한마디하고는 계획이 다 된것을 암시하면서 "당신(고정훈)은 외신기자등 외국 여론 관계를 맡으라."고 말했다.

정국은도 생사람 죽은 셈이다.

그때 김창룡을 만난것은 그가 암살되기 15일 전이었는데 그가 죽고 난후 저(고정훈 자신을 말하는듯)와 원용덕,연정희 해군중령등은 우리가 김창룡이를 죽였으리라고 의심받고 육군 특무기관원에게 미행당했다. 김창룡을 저격한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검찰에서는 나를 명예훼손이니 뭐니 묻지 않고 자꾸만 "빨갱이가 아니냐?"는듯이 남북교류등을 추궁하였다.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72700209103013&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60-07-27&officeId=00020&pageNo=3&printNo=11800&publishType=00010

재판장한테도 핀잔을 1960년 7월 27일 동아일보.

4.19 혁명 후 온갖잡음을 일으켜 수수께끼의 인물로 클로즈업된 고정훈이라는 사나이, 첫공판날인 26일 상오 비좁은 7호 법정에서 그는 절도,폭행,소매치기 20여명의 잡범들 틈에 끼어 억지침착을 꾀하면서 수많은 카메라맨들의 플래쉬앞에서 무대에 올라선 배우처럼 급작스런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흰 모시 아래위에 차린 그는 딴에 태연한 대답을 가장하려는 듯했으나,그동안의 감방생활때문인지 창백한 얼굴에는 불안과 초조한 눈초리가 이따금씩 스쳐간다.

고정훈하는 재판장의 호명에 "네"할뿐 멍청하게 피고석에 앉았던 고정훈은 "앞에 나오라!"는 호령을 받고 껑충 뛰다시피 일어서서 진술대로 주소는 "내집이 아니기때문에 모릅니다."는 것이고, 재산은 15만환정도의 책뿐!"이라고...

조봉암 사건의 진상에 대하여 그가 사형당한 직후부터...결사적으로 노력해서 알아보려 했읍니다."비교적 또렷또렷한 말투.

그러나 고정훈은 걸핏하면 미 정보기관이니 HID의 제 부하니, 저의 정보망이니 이런 말을 늘어놓다가 재판장한테 "이 사람아 자네가 무슨 막연한 소리를 하는건가... 지금은 공판장인데 분명한 얘기를 해..."하고 야단을 맞았고,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말고 조봉암 사건의 진상이라고 기자들한테 말한 내용의 정보 입수 경위를 똑똑히 얘기하라"고 되풀이 주의받았다.

고정훈의 이력은 해방 직후 북한에서 소련 군기관에서 신문번역도 하고, 남하한 후로는 미,소 공동위원회때 통역도 하고 그후 미군 첩보기관에 있다가 코리언 리퍼블릭에 가고, 김창룡과도 친하고 국군중령까지 지내고...

이날 공판정에서 그는 시종 어마어마한 폭로진술을 되풀이했으나 돌이켜 따져보면 모두가 근거나 증거가 희박할듯한 그야말로 수수께끼같기도 하고,잠꼬대같기도한 내용뿐...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112900209103018&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60-11-29&officeId=00020&pageNo=3&printNo=11925&publishType=00010

고법에서도 선고유예 언도.1960년 11월 29일 동아일보.

서울고법형사 2부 (재판장 = 조창섭 부장판사)는 28일 상오 고정훈 피고(전 구국청년당수)에게 선고유예의 판결을 언도했다. 조 재판장은 이날 고법 1호 법정에서 열린 공판에서 판결이유를 통하여,

1. 진보당 사건이 날조라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의 점은 반증이 없으므로 허위의 사실을 유포했다고 추정할수밖에 없으나, 피고가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기때문에 정상을 고려할수있고.

2. 곽의장에 대한 공무집행방해는 당시의 사정을 보아서는 있을수있는 일이므로 이점 역시 정상을 고려하여 선고유예의 판결을 내리는것이라고 말했다.

고정훈 피고는 1심에서 검사의 징역 5년,구형 징역 1년의 언도를 받았던것이다. 이날 고정훈 피고는 선고유예의 고법 판결에 대해서도 상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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