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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요코야마 미츠테루 단편 : 닌키(忍鬼)





수록 단행본 : 화도참풍록(火盗斬風録)
작가 요코야마 미츠테루(横山 光輝)  
제목 닌키(忍鬼)
1968년 작품

후쿠시마 마사노리에게는 코가 닌자라는 닌자부대가 있었다.
지겐사이(自幻斉)가 이끄는 닌자부대는 매우 강했다.
도쿠가와 막부도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몰락시키려고 해도
지겐사이의 방첩부대(닌자부대)가 막아서 튼튼했다.

결국 도쿠가와 막부는 이가닌자에게 지겐사이 암살을 명령한다.

그뒤 지겐사이와 아케미(朱実)의 만남이....





http://www.yokoyama-mitsuteru.com/database/user/Search.php?main_table_no=1&template_name=work_details.html&m_prk=131&search_type_m_prk=3



나의 감상 : 지겐사이의 죽음이 안타깝다. 

68년작이지만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그리는 에로씬이 좋다. (물론 이글루스에 올릴때는 짤랐다)

요코야마 미츠테루 그림체의 에로 동인지도 있으면 좋겠다?


나무위키 후쿠시마 마사노리 항목

1619년 태풍으로 인해 히로시마성의 상당 부분이 파손되었다. 당시 무가제법도에 의하면 이는 에도에 보고를 한 이후 허가가 떨어져야 성의 보수가 가능했으나 마사노리는 허가를 기다리지 않고 보수에 착수했다. 이미 이전에 1국1성령을 어긴 전적이 있었던 마사노리였기에 마찰을 피하지 못했고 직후의 에도로 볼모를 보내는 것을 거부한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히로시마번을 몰수당하게 된다.[3][4] 

이후 마사노리는 시나노 가와나카섬[5]의 소영주(4만 5천석)로 좌천되어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그가 사망한 후, 막부는 시신 화장을 명분삼아, 실제로는 재기를 막기 위해 기존 영지를 몰수했다. 다만 개역은 하지 않고, 그 아들인 후쿠시마 마사토시를 중앙으로 불러들여 3,000석의 영지를 갖는 하타모토로 삼았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에도 막부 시대 고위 무사의 지위를 메이지 대까지 유지하였다. 

그의 출세 및 몰락을 정리해 보자면-


1582년 야마자키 싸움 - 500석
1583년 시즈가타케 싸움 - 5,000석(다른 칠본창 멤버는 각 3,000석)
1587년 히데요시 큐슈정벌 - 이요(伊予)11만석 다이묘
1595년 임진왜란 - 오와리 24만석 다이묘
1600년 세키가하라 싸움 - 아키 및 빙고 49만 8,200석 다이묘(이후 51만 5,800석까지 증가)
1619년 히로시마성 무단수리 - 시나노 4만5천석 감봉
1620년 아들 타다카츠 사망, 2만5천석 막부에 헌납(2만석)
1624년 사망, 막부의 허락없이 시신을 화장한 죄로 나머지 2만석 몰수
아들 마사토시, 3,000석짜리 하타모토로 몰락[6]

[6] 그나마 가토 기요마사보다는 나은게, 가토 집안은 아예 영지를 모두 몰수당하고 막부 시절 무사 지위를 유지했는지조차 의문인 신세로 전락해 후손만 겨우 이어져 오는 반면 이쪽은 고위 무사인 하타모토로 남아 권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에도시대에 있어서 막부직속이면서 봉록이 천석 이상인 하타모토 집안은 다이묘와 동격으로 놀았으니 영향력도 상당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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