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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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알라나오는 태권더 박 21화 감상 태권더 박







일베와 루리웹에도 퍼가라

이게 무슨 의미죠?




6. 연역적인 지식은 필요없고 귀납적인 트랜드 파악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미친놈을 봤다. 심지어 이런 이유로 앞으로 경제학자들은 사회의 현상을 통해서 경제 이론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하던데.. 그 논리면 의사가 왜 필요할까? 환자들의 여러 증상과 경험으로 약을 지어주면 되는게 아닌가? 아닌말로 내가 기침이 심해져서 약먹고 일주일만에 나았지만 백부님은 2년전에 기침이 심해져서 지내다가 "폐암" 판정받고 돌아가셨는데.. 귀납적인 방식으로 연구했다면 나나 백부님이나 같은건데? 의학과 경제학이 다르지만 왜 사람들은 아무 이야기가 그렇게 함부로 하는지 모르겠다. 글구보니 임상적인 귀납 요법으로 의학을 재단하는게 종편의 그 많은 프로들 아닌가?

광복절날 일본문화를 자제한다는거 반일오덕 심리






정말로 문화와 정치를 별개라고 본다면

광복절날 일본옷을 입었다거나 일본옷을 발매했다고 비난하진 않겠지


평소에는 말도 안되는 날조로 일본을 적대시하고 증오하면서도 일본문화가 매력이 있다보니

 '성숙한 시민이라면 문화랑 정치는 별개Nida' 지껄이면서 일본문화를 누려왔지만

국뽕(99.9%의 한국인)이라면 필연 마음속으로는 꺼림직한 것이 쌓이는데

그걸 속죄하고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것이 바로 광복절 왜색시비지



반일오덕이 일본게임 애니를 빨면서 마음속에 쌓인 죄책감을

주기적인 우익애니 타령과 일본에 대한 비하로(원폭피해자 조롱 혹은 헬본타령) 풀듯이

'일본문화를 누리지만 나는 자랑스런 한민족으로서 역사에 관해 지킬 것은 지키는 참 한국인Nida' 하는 것과 동일하다



평소에는 돈카츠, 스시, 라멘, 일본과자, 호로요이, 일본여행, 일본옷 캐쉬템 을 사대면서 광복절날만

'Aigo!!!!!!뭐하는 짓인 Nikaaaaaaa!!!!!!'

한마디만 하면 바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받는 것



이는 마치 종교적 행사와 같다

평소에 일상생활하면서 신앙과 신에게 소홀히하고 율법을 어겨왔지만.

특별한 날에 속죄의식을 하면서 다시 영적으로 용서받는 것..

이미 반일교는 그 교리와 종교의식마저 모두 정립된 성숙한 종교다
 
 
 

   . 
 



무슨의미인지

박기X씨 입각(약간 감정 있습니다)


1. 이건 탁탁탁(가명) 이상으로 폭거입니다. 아닌말로 참여정부 최고의 스캔들인 황우석 사건의 공동 정범. 아니 주범이라고 볼수있고 노무현 지지자분들조차도 "저 사람이 노통의 눈과 귀를 막아서 그런 일이 벌어진"거라고 혀를 찼던 그 사람이에요. 503에 대해서 절대로 좋은 인상을 주지 않는 프레시안이나 SNS의 문통 지지자들조차도 충격을 먹은겁니다. 심지어 "내가 저런 사람 뽑히는거 보려고 촛불 들었나"라는 이야기도 할 정도니까요

극단적인 예를 들면 누군가가 "한국전쟁은 남한의 북침이다" "태평양 전쟁은 일본의 아세아 민족 해방전쟁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해당 단체에서 일하면서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사료조작(!!!) 학회 깽판등으로 추문을 일으켰는데 국방부 장관이나 교육부 장관을 시키는 것이나 같은 이야기입니다. 아니 나는 김일성이를 좋아한다는 건 "취향의 문제"이지만 황우석 사건은 해서는 안될 일이었어요. 노 대통령 얼굴에 똥칠을 충분히 했구요

2. 이 사람 자체도 저번 선거때 앞번 순서로 비례 대표주려다가 메르카츠 김노인 계파때문에 뒤로 밀려난 경력이 있고하니 입각썰은 돌았는데 참담할 따름입니다.

3. 지금이 무슨 석사만 해도 교수줄 정도로 인재가 없는 것도 아니고 과학계에서 그보다 더 한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저 사람을 굳이 뽑는건 인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참여정부의 잘못은 없고 모든 것이 선이다"라는 무오류의 표상이라고 봐요. 황우석 사태는 정책적 오류도 아니고 실패도 아닌 엄연한 범죄에 가까운 일이지만 "참여정부가 했으니 잘 한것이다"로 몰아버리는거.. 왜 서프라이즈가 황우석 지지모임이 되었고 김X준씨가 황우석빠돌이가 되었는지 생각하시면 답이 나오는겁니다. 네. 지도자는 무오류여야 하지요. 지도자의 실패는 사실 적폐 탓이구요. 김일성 수령은 인천상륙을 3달전에 예측했지만 박헌영이가 방해해서 대비못한게 진리 아니겠습니까

덧: 지금도 일부에서는 "황우석은 정당했다"내지는 "문통이 저러는건 우리가 모르는 고단수"라고 하는 분들도 있던데.. ㅉㅉㅉ

지금이야 뭐라하지만 또 인터뷰 몇번 띄우면 옷 벗어재끼면서 지지하는 문사철들은 이번엔 어떤 논지를 펼칠까요? 네 어용지식인 시티즌님 예능에서 해해거리지 말고 말씀한번 해보세요

지도자의 의무는

여러가지



이번 교육공무원 사태는 한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어요. 이전 정권(심지어 DJ 연간부터 벌어진 여러 사건들)의 폭탄 돌리기가 이제야 터질 가능성이 높다는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시발점이에요. 원인이 지금 대통령에게 있을수도 있고 그 전에 쥐대왕때부터 있을수도 있고 그 이전부터 "예측은 했지만 쉬쉬하고 폭탄돌리기"를 벌였던간에요. 이전부터 예측되어도 지금 폭탄이 터진다면 지금 다 뒤집어쓴다는건 YS가 잘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걸 해결하는게 現 지도자의 의무입니다.

일본에 팬레터를 보내자 팬레터

물론 내 옆방 사람이 보낸거임

근데

조석 인터뷰


광주 5.18이 한국 민주주의에 무슨 영향을 줬나요

루리웹은 왜 미친놈들인가

http://egloos.zum.com/dukeclown/v/4322589
가장 첫번째로 말할수 있는 건 오타쿠들 현실 인식능력이 저 수준이라는 거죠.
사실 루리웹 같은 수용소 새끼들이 소위 진보정치에 가지는 이유는 딱 하나인데
소위 자신들의 덕질이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덜 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때문에
자기들에게 흘러들어올 비난을 대신 받고 대신 까이는 허수아비가 필요합니다.
그냥 취미생활을 정상적으로 즐기면 되는데 그걸 인정받기위하여 수용소 사람들은 
쉽게 진보에 물들게 됩니다. 

복잡한 논리없이 오직 진영과 계급으로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상대를 만들어주니 

생각할필요 없는 증오만 사회부적응자 루리웹에게 자신들의 우월감을 불어넣어줄수있습니다. 

(행복나라 친구들의 글을 루리웹에 맞게 수정함)

일본만화에서 노알라 나온다. 태권더 박


태권더 박에서 노알라 나온다 태권더 박


일본 만화에서 미화되는 재특회 사쿠라이 마코토 회장.jpg






출처 안남겨도 좋으니 일베, 루리에도 퍼가라

왜냐하면



이웃분께서 본드와 본드걸에 대해서 굉장히 재미있는 글을 남기셨다. 난 여기서 생각해보는게  과연 한국 대중매체에서는 제임스 본드가 있는가 이다.




사실 한국에서 정보기관을 소재로 한 대중작품을 남기는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정보보안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과거 정보기관이 벌인 인권탄압이나 정치 개입에 대한 원죄와 공포로 인해서 소재가 되는건 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할수 있다. 그 주제가 자유로운  일본조차도 일본 헌병대를 메인 선역인 주연으로 한 대중작품을 만들기 어려운게 아닌가? 7급 공무원등의 대한민국 국정원을 소재로한 코미디물이 나온것도 민주정부 이후라는것도 사실 그런 이유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이런 정보기관을 다룬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닌게 유신시대 반공 매체로 급조된  시리즈로 "특별수사본부"라는 시리즈가 만들어진바 있다.

그런데 이 작을 보면 정보부 요원이나 법조인은 하나같이 재미없는 고자 캐릭터이다. 사건을 해결하면서 여성들과 로맨스를 펼치는 대신에 피로에 찌들고 일에 치여 살면서 "투철한 반공정신"을 중얼거리는 전형적인 한국의 교과서적인 중간 관리층의 모습이다. 오히려 유쾌한 로맨스와 성적 개방성은 역설적으로 상대방인 "북한 간첩"들이 벌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관리들은 심지어 "7호실 손님"의 오지명 형사처럼 로맨스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그걸 거부하거나 어벙벙벙 지나가는 일이 대부분이니.


유일한 예외는 특별수사본부: 여대상 이난희 사건에 나오는 최무룡 수사관인데.. 여기서 좌익여대생과 벌이는 불타는 로맨스는 청춘코미디도 안되는 3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차라리 최무룡은 공산당 잡는다고 뛰어다닐때가 더 배우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고 심지어 이 바닥의 평조차도 "이 작은 시리즈 최악이고 최무룡씨가 돈이 딸려서 저런거 찍었다"라고 할 정도이니..

이런 영화 이외에도 소설에서는 007비슷한 시리즈는 없지는 않았다. 작가 이상우의 추경감 시리즈가 있었고. 설정이 각각 달라서 일종의 평행우주에서 벌어지는 스토리의 캐릭터지만 김성종의 오병호 시리즈도 있었다. 하지만 이 두사람 전부 007류와는 달리 세파에 찌들고 정치에는 무관한 현장직으로서의  의미가 더 있었다. 추경감의 경우는 철저한 가족주의자 가장이고. 오병호는 대부분 배우자들이 사별. 혹은 이혼한 상태로서 여자를 사귀는데 도덕적이나 법적으로 자유로운 캐릭터이지만 철저하게 로맨스를 배제한다. 심지어 서브 캐릭으로 나온 색기발랄한 여형사 류화시와의 관계도 직장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를 크게 넘지 않는다.




이런점은 한국 작가들 세대의 철저한 도덕의식이 체화되었고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것이라 본다. 대중적인 작품을 쓴 김성종 작가조차도 타의에 의해서도 부정한 여자는 응징되어야한다는 철학이 있던바.  비록 실생활에서 높으신 분들이 요정이다 시바스 리갈이다 성적으로 유쾌한 행동을 할 지언정 작품내에서의 주인공 공무원의 성적인 일탈은 요구하지 않는다. 실지로 많은 작품들의 주인공인 탐정이나 군인. 경찰은 비록 수사과정에서 얼마든지 피의자들에 대한 폭력. 불법수사. 고문(...)등을 벌일지언정 성적 일탈은 벌이지 않는 특징은 어쩌면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최후의 마지노선이지 않았을까?



한국 대중물에서 그나마 007과 근접한 캐릭터는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의 장하림이라고 할수 있다. 극화판에서는 시간이나 주제관계상 대부분 생략했지만 장하림은 원작에서는 상당히 많은 여성들과 업무적, 애정적 관계를 맺고 그중 일부와는 육체 관계까지도 맺는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그와 이렇게 맺어진 많은 여성들이 대부분 자의건 타의건 이미 이전에 남자에게 몸을 준 적이 있다는 것이다. 첫 애인인 가쯔코는 전쟁 미망인이었고. 주인공이자 영원한 사랑인 윤여옥은 자그마치 종군위안부였다. 오명희와 같이 순수한 처녀라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장하림과 관계를 맺은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일본이나 북한의 권력기관에 의해 상당히  끔찍한 성적 학대 끝에 살해당하는 결말을 맺는다.

결구 장하림의 경우도 주인공인 윤여옥과는 맺어지지 못하고 최종적으로 가정을 꾸리게 되는건 그를 만나기 전까지 "순결"했던 엘리트 여성인 "남지"라는 캐릭터이다. 즉 007과 같은 여자와 깊은 관계를 맺는 캐릭터이지만 그에게 설사 "사랑이 진실했다"할지라도 결말은 순결한 사람과의 가정이라는 대단히 보수적인 사고방식이 은연중에 깔려있다고 할수 있다.

지금의 경우는 대중문화에서 이런 케이스는 없다. 얼마든지 아침드라마에서도 미혼모나 돌싱들이 새로운 사람과 연을 맺고 자식까지도 떠 맡는 결말로 가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엘리트 공직자가 성적인 지유를 마음껏 누리는-그것도 자신의 일에 충실히 하면서- 것은 아직은 정서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볼수 있다. 주인공인 국가기관종사자가 사생아를 낳는다거나 결코 순결하지 않은 여성들과 마음껏 관계를 맺는  한국판 007은 아직도 먼 일이 아닐지.
















왜냐하면 정보기관이 당시에는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근거있나요?

궁금증

YS의 최측근인 최형우는 박정희 연간에 김근태는 명함도 못내밀만큼의 어마무시한 고문을 당했던 사람이다.(정치인 XX에 핀셋 꽂아 놓는거 상상해본적 있는가?) 

그 가족도 심심하면 기관에 끌려갔고 부인은 만삭 상태에서 두들겨 맞은 적도 있고 아들 하나는 백일도 안된 상태에서 중정 지하실에 유기된 적도 있다.

5공 정권하에서 YS가 사경을 해맬때 손명순 여사와 함께 끝까지 단식투쟁 장소를 지킨게 최형우 의원이다.

근데 아들(중정지하실에 팽개쳐진 그 아들 ㅋㅋ)의 전문대 부정 입학 의혹으로 한번에 모가지 되었다. 그것도 YS가 서슬퍼렇게 집권하고 지지율이 하늘을 찌르던 바로 그 시기... 




고문으로 역사왜곡을?

http://news.joins.com/article/2846404
「죽음 앞둔 白凡암살범 1백2 1시간 肉聲녹음.安斗熙의 최후證言」은 本誌가 독점해 최초로 공개하는 것.

[출처: 중앙일보] <월간중앙>신년호-김대중씨 특별기고 21세기의전망


◎“김지웅·장은산이 백범암살 밀명”/암살전날 “마지막 주사위는 안 소위가…”/경교장에 접근하려 한독당 위장 입당
백범 김구선생 암살범 안두희씨(77)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그것도 물리적 강제가 아닌,스스로 녹음기 앞에 앉아 무려 1백21시간 동안 백범 암살에 얽힌 진상을 털어놓았다. 『월간중앙』 94년 1월호 관련기사(「안두희의 최후증언」)에 따르면 안씨는 「이게 마지막 유언에 가까운 진술」 「처음으로 진실을 고해하는 진술」이란 심경 아래 44년전 자신의 범행전후 과정을 상세히 밝혔다.
이 증언에서 안씨는 49년 당시 육군 포병소위였던 자신이 희대의 모사 김지웅과 포병사령관 장은산중령의 사주를 받아 호시탐탐 김구 암살 기회를 노렸다고 털어 놓았다.
아울러 안씨는 김구의 거처인 경교장(지금은 고려병원 건물)에 접근할 목적으로 한국독립당(위원장 김구)에 위장 입당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증언했다.
안씨의 이같은 진술은 지난 15일 국회 법사위에 만들어진 「백범 김구시해 배후진상조사위」(위원장 강신옥의원) 활동을 앞두고 이루어진 것이어서 더욱 중요하다.
다음은 「안두희 증언」의 축약이다.
근래에 내 기운이 아주 쇠잔해 버렸고,또 3년전에는 생각지도 않은 무슨 중풍이란 중병에 걸려 반신불수가 됐다. 이 마당에선 처음으로 진실을 고해하는 증언이 될 것을 다짐하며 나의 과오를 솔직히 고백하려 한다. 이는 또한 외국에 가 있는 자식들과 처에 대한 마지막 유언에 가까운 진술이 될 것이다.
나는 1947년 봄 고향(평북 용암포)을 떠나 월남,서울에서 서북청년단 종로지부에서 타공활동을 했었다. 그러다 같은 서청단원인 홍종만의 소개로 희대의 정치브로커 김지웅을 알게됐고,그와 자주 만났다. 후암동에 있는 그의 호화스런 저택에 초대받아 간 적도 있다.
그후 나는 사관학교(육사 8기 특별3반)에 입교,포병장교가 됐다. 김지웅의 음모에 따라 한국독립당에 입당한 것은 그 직후의 일이다. 어느날 부대로 김지웅이가 면회를 왔다. 그는 『내 지금 장은산 포병사령관을 만나러 가니까니 좀 있다가 와서 만나자』며 내 얼굴만 보고 나가는 것이었다. 30분쯤 후 장 포병사령관실로 불려갓다. 장 사령관은 이런저런 얘기끝에 이렇게 밀명아닌 밀명을 내렸다.
『참 김지웅씨한테 들으니까 좋은 정보수집을 하기 위해서 안 소위가 한독당에 가입했고,한독당 조직부장 김학규하고도 벌써 두어번 만났다고 하는데,왜 그저 일요일 같은 때 경교장 출입을 안하는가. 일요일엔 경교장에 드나들면서,김구선생도 가까이 할겸 그 사람들 조직도 좀 파헤쳐 보라.』
그 뒤 일요일 아침 김학규 조직부장을 만나 경교장 출입을 부탁해 김구선생을 서너차례 만났다.


DA 300



49년 6월25일,그러니까 백범을 암살하기 하루 전날 나는 김지웅·홍종만과 함께 서울대병원에 입원중인 장은산 포병사령관의 병실로 찾아갔다. 그동안 장은 홍종만을 비롯한 암살 행동대원들을 동원,백범암살 기회를 노렸으나 모두 실패로 끝나 매우 신경질적이었다.
『인제 뭐 이것두 저것두 안되면 마지막 주사위 밖에 없다. 마지막 주사위는 안 소위가 하는 거 알지 않는가. 그저 나중에 죽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너밖에 할 사람이 없다.』 뭐 안하갔다구두 못 그럴 분위기였다. 그저 하겠시다,그러구선 나왔다.
일요일 오전 나는 정상을 한채 군복을 입고 권총까지 찬채로 경교장으로 갔다. 그때가 12시쯤이었는데 내 마음으론 명배우가 돼야 겠다는 생각으로 현관문을 열고 구두를 벗으니 비서들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경교장 2층으로 올라가 깍듯이 경례하고 앉았다. 『오래 간만이 됐다,안군.』 『예,그렇게 됐습니다.』 이렇게 몇마디 얘기를 했다.
그러다 그대로 그저 나도 모르게 총을 빼자마자 한발 갈기니까니,선생은 벌써 어데 두골에 맞아서 말두 못하구 팍 쓰러지는데,그 다음에 뭐 그저 무조건,몇방 더 쏜 기억이 난다. 그럭하구선 완전히 선생이 쓰러지드만.

[출처: 중앙일보] 안두희 “유언에 가까운 진술” 「월간중앙」 신년호 증언


뭐 김창룡 이니 인천 에 김일한 이니 이사람 들의 종용 과 권고 가 있어서 쓰긴 썼지
 만 맨 첨 에는 나두 거 쓸 맘 이 있어 썼 습니 다 . 나중에 책 이 돼서 나온 걸 보니까 니
, 뭐 신태양 산가 어딘가 에서 한 거 같은데 , 중간 에 거저 내가 쓴 원고 와 딴 원고입그 『 시역 의 고민 』 책 아낙 에 무슨
 김학 부장 이나 또 혹은 경교장 비서실 비서 들이 나 에게 묻길 , 포병 애길 하니까
 묻는그러면 영등포 에서 경무대 향해서 포 를
 쓸 수 있는가 ? 또 쏘면 명중 을 할 수 있는가 ? 혹은 그 뒤에 저거 무슨 , 무슨 산 인지
북한산 이겠지 아마 , 거기 의정부 도 어떻게
 맞출 수 있는가 뭐 , 이런 걸 물어 봤다 . 그랬어요 , 그 책 에 근데 그 『 시역 의 고민 」
이 책 이 되어서 나온 내용 을 보니까 니 , 김구 선생 비서 들 이 , 김학규 씨 가 나 한테
그런 질문 을
 했다 하는 걸 책 에 썼는데 , 그거 야말로 김창룡 이 김일한 이 가 그거 뭐 저 남의
 저서 를 갔다가 뭐 - 했다 .


http://kyungkyojang.or.kr/zboard/view.php?id=album&no=42
비운의역사현장아! 경교장 - 99페이지
경교장복원범민족추진위원회

김학규 자서전


평양방송을 듣건대 강. 표 양 소령 환영회가 평양에서 굉장하게 벌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그럴 거라고 그 자들은 그만 못한 것도 확대해서 선전하는 판인데 이번 사건이야말로 큰 선전 기회가 아니냐고 나는 말했다.

“큰일 났습니다. 대한민국 군대는 지금 썩고 있습니다” 안두희는 나의 눈치를 살펴보면서 주워 섬기는 것이었다. “썩은 이유가 어디 있는가?”하고 나는 물었다.
“썩은 이유를 들자면,
첫째는 군대의 간부라는 자들이 일제시대에 왜놈 앞에서 경찰이나 기타 부문에서 왜놈 앞잡이로 있으면서 우리 동포를 압박하던 자들이 군대에 많이 들어가서 사단장이니 연대장이니 하는 간부급에 앉아서 호령을 하고 있으니 군심에 복종될 리가 없을 것이고, 둘째는 상부에서는 군의 사병들을 우대하라고 국가의 규정한 정식비, 부식비, 피복 등을 또박또박 내려 보내지만 간부급에 앉아 있는 자들이 위에 앉아서, 모두들 사복을 채워 잘라 먹으니 아래 있는 사병들은 못 먹고, 못 입고, 영양실조로 인하여 쓰러지게 되니 사기가 저하되고 이북으로 넘어가는 것이니 이를 나무랄 수도 없을 것이 아닙니까?” 안두희의 장광설이었다.

행정부문이나 기타 부문이 썩어진다는 사실은 신문지상에 나타나는 것을 보아 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군대 내부가 이렇게 까지 썩는다는 것은 나로서 처음 듣는 일이고 또는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사실 군대가 그렇게 썩었는가?”고 나는 힘을 주어 되채어 물었다.
“사실입니다.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안두희의 긍정하는 대답이었다.
“대한민국도 바르게 되려면 일본의 5,26사건 같은 兵變이 한 번 일어나야 됩니다” 안두희의 열변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그런 말은 위험한 말이다’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자가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할까 하는 생각조차 해보지도 않았다. 청년들의 흔히 있을 수 있는 현실 불만증이려니 생각하였을 뿐이다. 그는 또 계속해서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포병대에서 포를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포가 최근 미국에서 들어온 것인데 포의 성능이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위대합니다. 가령 우리 포병 진지가 삼팔선 부근이라 하면 우리 사정 내에 들어온 이북 땅 칠 십리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초토될 것입니다. 안두희의 말이었다.
우리 국군이 이러한 고성능의 화력을 가지고 있다는데 대하여 나는 기뻐했다.

“우리 포병대는 지금 영등포에 있습니다. 나는 나의 포구를 항상 이승만 대통령이 있는 경무대를 조준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든지 스위치만 한 번 누르면 경무대는 나의 대포 한방에 날아갈 것입니다” 하고 또한 안두희는 위험한 말을 하였다.

1949년 5월 중순 경 홍종만은 내가 일하고 있는 종로 3가 한독당 중앙 본부를 찾아와서 잠깐만 시간을 낼 수 없겠는가 하기에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시간을 낼 수 있다고 대답하고 내가 보던 사무를 대강대강 마치고 밖으로 그들을 따라 나왔다. 한독당 본부 건너편에 있는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이미 준비해 놓았던 것처럼 곧 맥주며 안주며 음식이 들어왔다. 그들이 이와 같이 경비를 내어 가면서 까지 나를 보자고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함정을 파 놓고 그 곳으로 나를 몰아넣자는 것임을 나는 몰랐던 것이다. 나에게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무엇이었던가? 한독당 조직부장의 이름으로 어떤 행동지령문을 한 장 발급해 달라는 것이었다.
어떤 문자로 된 증거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영등포에 주둔하고 있는 포병대에는 장은산이라는 청년이 사령관으로 있는데 매우 좋은 청년이며, 그 역시 김구 선생을 숭배하며 또 나 김학규를 한번 뵙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포병대 안에는 대개가 서북 청년단 동지들이 간부로 되어 있는데 자기네 친구들이 많이 있으니 당의 조직을 두자는 것이었다. 그러하려면 자기(안)가 무슨 증거품 즉, 당의 행동지령문 같은 것이 한 장 있어야 그들에게 보이고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자기를 믿어 주지 않으니 입장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행동 지령이 필요하다고 육박해 조르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정색하고,
“행동 명령” 무슨 행동이란 말인가? 하고 따져 물었다. 안은 나를 정시하지 못하고 나의 시선을 피하면서
“아무 행동이구요...
”말끝을 흐리고 맥주 한 잔을 단숨에 들이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그날 그들은 나를 꼬이여 좀 더 깊은 함정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으나 나는 그들의 함정으로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고,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약 2,3일 지나서였다.
홍종만이는 또 종로 3가 당본부에 나타났다. 금일 오후 5시 쯤 해서 나를 모시러 올 테니 딴 곳에 시간 약속을 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갔다.





김지웅 : 백범암살과 무관하다고 60년대 검찰이 결론내림

김창룡 : 당시 의정부에서 근부했으며 6월 15일에 육군 방첩대로 들어감

김구와 안두희 대화 시간 : 10분이상이었다고 헌병사령부가 발표

시역의 고민은 위작이다 : 권중희가 대침 고문을 허위자백을 강요

궁금합니다





덧: 근데 저 논리면 김일성이나 도죠 히데키도 비판받을 필요 없는데? 이런 내제적 접근을 감안하고도 정말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비판받는거 모르나?



나의 생각 : 무슨 나쁜 짓이요?



창씨개명이 강제였나요




솔직히 부역면에서는 좀 큰 "홍사익"도 그렇고 말 그대로 "악질 친일파"에 들어갈 모윤숙도 개명을 안 했다고 "그걸 자율"이라고 믿는 분이 몇명이나 있을지 ㅉㅉㅉ






증거 좀

질문이요



아니 미군정 시기가 무슨 일제 시대처럼 조선인의 주권이 아예 없는 시대인가?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식민통치의 후유증과 새조국 건설의 일념때문이지만- 조선인의 정치활동이 많았고(그 유명한 남로당도 정식 인가되서 활동하는 정당이었고) - 저 일제 시대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인데.

물론 소련군정이나 미군정 모두 "자신의 진영에 속하는 정권을 자신의 군정지에 세우려는" 즉 영향력을 증대한건 맞지만 무슨 독립이 안되는 일제시대와 비교할수 있는지. 미군정이나 소군정의 절반만이라도 제국 일본이 우리에게 했으면 이런 일 없는데? 애시당초 저렇게 독립 안한 상태라면 왜 학자들이 미군정 시기에 대해서 그렇게 연구하는데?

저분 시각에 의하면 천하의 개쌍놈임이 분명한 브루스 커밍스조차도 미군정시기에 남한인의 정치활동과 혁명적 역동성을 주제로 연구했다는거 모르나?

아. 아예 미군정시기는 미국 점령기니까 독립이 아니라고 말하는 곳 있다. 북한(...) 그러면 저 이야기는 북한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한 건가?  조선일보인데?








그래서 결국 미군들이 지배한거 맞잖아요

대만 만화계 클라스

















만화가의 어시스턴트(助手)의 팬네임을 보자














출처





대놓고 일본식 펜네임을 쓰다니 한국에서라면 가루가 되도록 까일것이다

BL 만화가 카이나, 뇌출혈로 사망






카이나의 모친이 트위터에서

카이나가 7월 1일에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월간 히바나, 휴간에 들어가서 화제




아마도 안 팔려서 그런가봅니다


이제 잡지들은 전자판으로만 팔아야하는 시대가 왔습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나무위키 주장대로 정말 이승만이 김구를 암살했나

나무위키 백범김구 암살사건 항목


이 때 백범은 서재에 있었으며 글씨를 쓰던 중 비서로부터 포병장교가 문안인사를 드리러 왔다며 보고하게 되고 백범은 들어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잠시 후 안두희가 백범 앞에 나타나게 되자 백범에게 먹물을 갈아도 되겠냐고 묻고 백범이 안두희의 모습을 보게 된 순간 안두희는 권총을 꺼내들며 백범을 향해 총을 발포하게 된다.


옮긴이 주 : 당시 김구와 안두희 대화는 12~13분으로 추정된다는 헌병사령부 발표가 있다.


(중략)


"오랜 시간에 흘러 한국 사회 전반에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김구 암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의 목소리가 커졌다. 여기에 1992년 드디어 안두희의 육성 증언이 나왔다. 이에 국회는 1993년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약 2년간의 조사 후 위원회는 「백범김구선생 암살진상국회조사보고서」를 작성하였고, 이 보고서는 1995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옮긴이 주 : 1992년 증언은 고문에 의한것으로 49년 외무부장관이 장택상이라고 하는등 역사와 맞지않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김구 암살사건은 당시 정부 발표처럼 한국독립당의 노선을 둘러싼 내분 과정에서 안두희가 개인적 차원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이 아니라, 면밀하게 준비·모의되고 조직적으로 역할이 분담된 정권 차원의 범죄 행위였음이 밝혀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구암살사건 [金九暗殺事件]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옮긴이 주 : 근거는?

3. 암살의 배후에 이승만이 있다?[편집]

세간에서는 백범과 사이가 좋지 않아진 대통령 이승만이 간접적으로 지시했다는 일설이 있는데, 실제로 심증이 가는 여러 가지 정황적 증거가 나타난다. 아래는 대표적인 여러 가지 심증들이다.

  •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독립운동가 조수앙(조용은)이 경무대로 찾아가 이승만을 만났는데, 이승만은 조수앙에게 "김구가 공산당과 내통하고 있다. 주변에 빨갱이가 있다."라고 모함을 했다.

옮긴이 주 : 유어만 회담록에 의하면 김구는 북한군이 남한군보다 강하고 남한을 침공할거라고 말했다. 근데 김구는 주한미군철수운동을 했다.

  • 김구가 암살된 것을 확인한 김구의 비서들이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보다 먼 거리에 있던 군 헌병대가 먼저 도착했다.[2] 결국 헌병대에 막힌 경찰은 안두희를 체포하지 못했고, 안두희는 군 헌병대에 끌려갔다. 당시 헌병 사령관은 김구를 존경하는 장흥 대령이었는데, 사건이 일어난 이후 5시간만에 해임되었다. 이후 이 사건은 오제도와 함께 이승만의 명령을 따라 반민특위를 해체한, 부사령관 전봉덕이 맡게 된다.

옮긴이 주 : 김삼웅의 패배한 암살에 실린 장흥 수기에 의하면 신성모의 명함에 적힌 명령으로 짤렸다한다.

  • 서북청년단 김성주가 술만 마시면 "백범 선생 암살을 누가 했는지 내가 다 알아."라고 말하고 다니다가 체포당하여 재판을 통해 7년형을 구형 받게 되었는데, 이승만은 자신의 오른팔인 계엄사령관 원용덕에게 "김성주는 극형에 처해야 한다."라고 편지를 보냈다. 이승만의 특명으로 김성주는 원용덕의 집 지하실로 끌려가 총살당했다.

옮긴이 주 : 이승만은 손원일에게 편지를 주면서 원용덕에게 보내라고 햇는데 김성주는 내가 임명한 평양치안국장 문봉제를 죽이려했다. 극형에 처하되 법대로 해라~라고 한거지

김구 암살과 관련이 없다.

  • 당시에 안두희의 상관인 포병 사령관 장은산이 안두희에게 암살을 지시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장은산도 술만 마시면 "내가 안두희 보스야!"라고 말하고 다니다가 친일파 김창룡에게 체포되어 수용된 후 옥사했다. 사인은 자살.

옮긴이 주 : 당시 장은산은 포병 사령관이고 안두희는 포병장교라서 장은산이 안두희 보스이다. 장은산은 탈영하려다가 잡혔다고 한다.

  • 안두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석방되었고, 2계급 특진을 하며 군에 복귀했다.

옮긴이 주 : 당시는 한국전쟁이라서 장교들이 부족했다.


위의 심증들을 통해 충분한 정황적 근거로 볼 때 '안두희는 이승만의 지시로 김구를 살해하였다'라고 추정할 수 있다.

  

옮긴이주  : 망상으로 선동은 안돼!                            
 

쓰레기의 본망 작가의 단편, she 감상




명작이다

의문이 드는데요

5.18을 "공식적"으로 다룬 최초의 공중파 다큐


3. 시대가 시대인지라 kbs쪽에서도 관련 다큐를 제작했는데 mbc와 달리 진압군쪽 입장을 나름 대변(!!)하는 스탠스를 취했습니다만 청문회에서 "대검은 아예 없었음 ㅇㅇ"이라는 장면과 대검 착검하고 시가지 뛰어다니는 공수부대를 다룬 일본 영상을 교차편집하는 용자짓을 KBS가 벌인건 꽤 유명하지요 ㅋ 




정말 광주 5.18에서 진압군이 대검으로 여자 가슴을 잘라죽이고

임산부 배를 갈라죽였나요?

왜냐하면

근데 궁금한건


그런거 공약하는분이 왜 사시는 폐지했데? 

사법고시야 말로(합격후 연수원 성적이나 배치는 다른 이야기지만) 

지잡이건 빨갱이 자식이건 고졸이건 경찰이건 서울법대건 실력으로 공평하게 뽑아주는 제도 아닌가?













사시를 3수이상 하는 고시폐인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거 같습니다

혐한류 작가, 선배 만화가 야스히코 요시카즈를 강도높게 비판




야마노 샤린 : 나는 야스히코 요시카즈 세대의(원문 : 이 세대의) 좌파에게는 반전을 말할수있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걸로 현실 국제 정치에도



혐한류 작가 신작, 여명3년 시사만화 4화(세이린도 재패니즘37호)






태권더 박 20화 스포.jpg 태권더 박





의문점

혼인무효건 기타- 안모씨의 경우


2. 오히려 지금은 차라리 혼인무효를 쉽게 해달라고 징징대는게 여성계의 입장이에요. 여자의 과거 세탁문제도 있고 한 배우자의 귀책사유에서 사기 혐의가 짙음에도 혼인무효가 안되서 여자가 피해보는 입장이 많다는 것이죠. 2010년대도 이런데 자그마치 박정희때 단순하게 여자를 위해서 남자가 해줬다. 이게 말입니까? 막걸리입니까? 법이 무슨 장난입니까? 시정 잡배도 아니고 그런 소리 하는 놈은 법알못이라는 겁니다.

3. 혼인무효가 굉장히 잘되는건 한가지에요. 인감위조등의 명명백백한 범죄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 인감위조했데. ㅇㅇ"이 아니고 그걸 법정에서 증명해야 하는겁니다. 그리고 70년대 그게 판결이 되었다는건 당사자가 파렴치범이라는 이야기이지요.

4. 더 무서운 이야기해드릴까요? 속된말로 "아따 결혼하려면 여자를 자빠뜨려야 한당께"라는건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런식으로 결혼한 사람 70년대에는 굉장히 많았구요. 근데요. 강간에 의해서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법은 한국에는 "없습니다" 아니 일제 시대 다이쇼 쇼와 시대때도 없어요. 사회적인 통념에 의한 이야기지요(웹에 도는 판사의 명판결은 판사 개인의 판단 결과입니다.) 즉 "법적으로는 강간 피해자가 그 사람의 배우자가 되라"는 강제규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서류 위조등으로 강제로 혼인신고가 되는건 적어도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수 없는겁니다. 법적으로 강제적인 부부에요. 이걸 해소하려고 소송하는 것이구요. 다시말해 육체적으로 여자를 아내로 하려고 하는게 "자빠뜨리는거"라면 이건 법의 힘으로 사람을 자빠뜨리는겁니다. 예. 완전히 법적 강간입니다. 아주 추악한 것이지요.

이런 사람이 법무부에 있어야 합니까? 그런 논리면 서세원이나 이상해씨 같은 케이스는 어떻게 쉴드치실겁니까? 이 두사람은 그래도 연예계에 종사했어도 지금도 욕을 먹고 있는데요.











그래서 안씨가 형사처벌이나 행정처분등을 받았습니까?

그래서 안씨가 처벌받았었나

1. 혼인무효[편집]

1975년 12월 21일, 안경환은 당시 사귀던 여성의 동의를 받지 않고 도장까지 위조해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했다가 이듬해 2월 26일 혼인무효 판결을 받았다.[1] 이 사실은 2017년 6월 15일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서울가정법원 판결문을 입수하면서 파악되었고, TV조선의 단독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TV조선 단독 보도)[2] 

본인은 사생활의 영역이라고 언급을 자제해달라고 했지만,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에 해당하는 도덕적 흠결로 볼 수 있어 인사청문회과정에서 적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법적으로는 이미 공소시효는 완성된 사건이다.[3] 다만, 법적 판단과 도덕적 판단은 별개이고 국민의 눈높이는 후자에 가깝다.

청와대에서는 이에 대해 본인의 소명이 나올 때까지는 결론을 내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한편 한 청와대 고위공직자는 70년대 여성인권이 열악한 상황을 감안하면 이혼대상인 배우자의 법적혼인상태를 무효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 고의로 위와 같은 진술로 혼인무효판결을 이끌어냈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기사)

6월 16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의 과오임을 인정했으며 평생 안고 가야 할 죄라고 하였다. 아내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사 그러나 현재 뉘우친 것과는 별개로 정의의 관점에서나 상징적 측면에서나 과거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존재하는' 분을 법치를 총괄하는 법무부 장관에 앉힐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하는 의견이 야당에서 제기되고 있으며 국민들 사이에 '안경환 사퇴 내지 지명철회'를 요구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유사한 사례로, 대선후보 홍준표는, 소위 말하는 돼지 발정제 사건에 대해 실행범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모의에 가담했다는 점만으로도 엄청난 비판을 사야 했는데, 안경환의 경우에는 아예 본인이 행위 당사자라는 점에서 비판점은 충분하다.

유사한 사례로 과거 김성희(1959)와 같은 피해자가 생긴 적이 있다.[4]

결국 청와대도 예의주시하겠다고 했다.#

3.1.1. 가정법원 판결문 유출 논란[편집]

안경환 본인의 자질 문제와는 별개로, 해당 판결문이 어떤 경로로 공개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42년 전의 판결문을, 그것도 거의 공개하지 않는 하급심 판결문을 대체 어떤 경위로 손에 넣었냐는 것. (기사)

이에 대해서는 주광덕의원의 판결문 입수가 명백한 불법이라는 의견이 있다 기사

또한 위의 내용 외에도 기본적으로 가사소송법 제10조, 제10조의2를 보면 가정법원이 처리한 사건에 대한 보도 및 당사자나 이해관계를 소명한 제3자가 아니면 기록의 열람 등이 금지되어 있기에 안경환 후보자나 해당소송의 상대방, 양자의 소송대리인[5]이 아닌 이상 판결문을 가질 정당한 권리가 없다. 다만 "이해 관계를 소명한 제3자", 즉 연관이 있음을 분명히 납득시킨 제 3자는 재판관이 허락하면 판결문을 정당하게 가질 수 있다. 그 밖에 보도도 금지되었어야 했다는 소리고 누군가의[6][7] 불법정보제공이 있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가사소송법상의 보도금지 위배나 개인정보 보호법 70조 위반 및 명예훼손의 위험성도 있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주광덕 측의 주장으로는 14일 날 청와대에서 국회에 보낸 인사청문요청서를 15일 날 읽어보고 혼인무효 경력을 파악, 당일에 의정자료전자유통시스템을 통해 대법원에 판결문 사본을 요구하여 법원행정처로부터 국회업무 이메일을 통해 판결문 사본을 제출받았다고 한다. (기사) 한편 청와대는 해당 사실을 몰랐던 점에 대해 "인사검증한다고 판결문을 확인하면 불법이라 판결문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답변했는데(기사), 청문회측에서는 판결문을 받는 것이 합법인지 관련 권한에 대해서 확인바람.[8]

3.2. 아들의 퇴학취소 압력 논란[편집]

2014년 아들이 다니던 학교에서 퇴학당할 위기에 처하자 교장에게 편지를 써 퇴학을 취소시켜 논란이 되고 있다. (기사) 일단 본인은 절차에 개입하거나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소명하였다. (기사)

허나 당시 심의 회의록을 보면 감경사유가 '고3임을 감안해서'였는데, 같은 학교에서 비슷한 시기에 최근에[9] 화장실이 너무 급해 여학생 화장실에서 휴지를 가져가다 적발된 고3 학생의 경우 본인이 과민성 대장 증후군으로 인해 배변 조절이 힘들다는 진단서와 부모의 탄원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퇴학조치되어 부모의 지위를 고려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상황.기사 무엇보다도 정말 참작사유가 있지 않은 한[10] 탄원서 정도로는 퇴학이 정학이나 전학 정도로 바뀌는 것이 일반적인데, 감경 폭이 커도 너무 크다.

또한 안 후보자 아들이 서울대에 수시모집 합격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기사 즉 퇴학 적어도 정학, 전학 처분이 내려졌다면 아무래도 서울대 수시모집은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는 사안이라는 것이 분명해보인다.

이 사건에 대해 2015년부터 고발하는 기사가 있었음이 밝혀졌다.기사 증언의 디테일이 아무리 봐도 유사하다. 해당 학교는 하나고등학교인듯하며, 나무위키의 하나고등학교/사건 및 사고 란을 보면 해당 의혹이 '또 다른 고위 공직자 자녀의 성추행 사건'으로 옛날부터 기록되어 있다. 언론에서 부당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한편, 2017년 6월 16일 본인의 기자회견 전문에 따르면 안 후보자는 "저의 아들은 재학하던 학교의 남녀학생을 엄격하게 분리시키는 학칙을 위반하였습니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기자회견 전문 적어도 여러 언론기사를 통해 드러나는 안씨 아들의 행동은 "재학 중 같은 학년 여학생을 자신의 기숙사 방에 불러들이고 이를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했다가 적발"된 사건으로서 단순한 '남녀엄격분리 학칙 위반' 정도가 아니라 일종의 '성추문'이다.관련 기사 때문에 안 후보자의 사건 인식이 지나치게 안이한게 아닌지 추궁할 여지는 있어보인다.

4. 후보직 사퇴[편집]

여러 논란이 이어진 후에도 안 후보자는 이날 회견에서 "(법무부 장관직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에게 주어진 마지막 소명으로 생각하고 국민의 여망인 검찰개혁과 법무부 탈검사화를 반드시 이루겠다"고 말해 자진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으나 발언 10시간 후 새 정부에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면서 "자신은 물러나지만 검찰개혁과 법무부의 탈검사화는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말을 끝으로 스스로 후보에서 물러났다. 연합뉴스 






적어도 형사처벌은 받지 않았는데 왜 반대하는지 궁금하다


제 생각에는

혼인무효건 기타- 안모씨의 경우

이런 사람이 법무부에 있어야 합니까? 








에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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