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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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더 박 22화 태권더 박




상황 설명을 해주자면

1권 이후

일본 총리 아베노 신지(아베 신조 패러디)는 초A급 전범으로

감옥가고

일본의 정신과 의사 카야마 리카를 패러디한 의사가

아베노 신지에게 전두엽 절제술을 추천하면서

아베노를 공격하지만

아베노의 반격에 쓰러진다

아베노는 아소 다로를 패러디한 아사오 이치타로를 만난다

그리고 마지막 짤방은 시바키의 내부 집단구타 사건을 풍자한거다





























추억의 만화 : 세계의 미스터리 조사반












1999년이 되면 무조건 세계가 망한다고 선동하는 만화.

그때는 무서웠지만 지금보면 웃기다.













일본 우익 만화가의 위안부 주장이 논란이 될걸로 예상.pg

번역
공원에 모인 박카스 할머니
9천원에 성매매를 한다.
나라의 보호도 연급도 없이 고령에 성매매를 해야하는등
살기 힘들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래! 나눔의 집에 가자(!!!)





번역(오역도 있을수있음)
박카스 할머니란 한국에서 드링크를 팔며 성매매를 하는 할머니들이다.
9천원으로 성매매를 한다.
이렇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나(하스미 도시코)는 약자 비즈니스는 싫지만
박카스 할머니만큼은 정말 약자이다. 
원래는 친척이나 나라가 그들을 돌봐줘야한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나눔의 집이라는 자칭 전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이 공동생활을 보내는 시설.
나는 전 종군위안부라고 말하고 그것을 연기하면 의식주는 보장받는다.
살기위하여 나눔의 집에 가는 할머니들도 적지않을것이다. 





(후방주의)하나우쿄 메이드대 작가의 근황










주인공이 피자배달하다가 재벌의 정부(숨겨둔 애인)과 떡치고

재벌이 용서하는 조건으로

재벌의 딸을 정상인으로 만들어달라고 명령,

주인공은 강화간(강제로 검열삭제와 화간의 중간)으로

재벌의 딸을 굴복시키지만

재벌에게는 막나가는 딸이 또 있었으니.......


올리는 목적 : 작가 모리시게는 하나우쿄 메이드대, 코이코이 7, 사쿠라 자쿠라로 

인기를 얻었으나 몰락했다. 

그의 재기를 위하여 그의 최신작을 널리알리는 것이다





제목お嬢様と僕。


작가もりしげ

연재지サイベリアコミックス


출판사海王社

うおぬまゆう의 郵便配達人 花木瞳子 CASE 親指泥棒 1권 감상


표지



3.11 대지진







여주인공, 집배원이다


경찰들이 끔살시체 발견



술집 여주인 와꾸 ㅆㅅㅌㅊ

에로씬도 있다





극비수사중






요약


여주인공과 끔찍한 살인사건이 절묘한 조합을 이루는 내용이다

1권은 여기서 끝이다



(번역)태권더 박 22화 예고편 태권더 박


태권더 박 22화 예고편 태권더 박








열등민족쪽바리는 패전국의 전범민족!


세계최고민족 한국인에게 사죄해라!


22화 초A급 전범 아베노 신지 전 총리의 역습






전 내각총리대신

전 중의원 의원

초A급전범 아베노 신지

총리대신재직시에 핵병기보유를 선언하여

전세계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갔었지만

다음날 내각불신임결의가 국회에서 가결

아베노 내각은 총X(판독불능)직이라고 되었고

동시에 아베노는 의원자격을 상실

아베노는 제3차 세계대전을 계획하였던 전쟁범죄자의 용X(판독불능)

초A급전범(평화에 대한 죄)라고 체포되었다.






국선 변호사 야스가와 : 국선변호사 야스가와라고 합니다. 


카야마 리카 닮은 사람 : 아아. 아베노씨, 제대로 약을 먹지 않으면 극우성인격장애는 낫지않아요.


간호사 : 낫지 않습니다~


카야마 리카 닮은 사람 : 담당 의사로써 역시 전두엽절제술(작중에는 로보토미 수술라고 나옴)을 해야겠습니다. 


얼른 수술동의서에 싸인하세요.


간호사 : 수술동의서는 여기에 놓습니다. 






카야마 리카 닮은 사람 : 이 파시스트...전쟁범죄인을 밖으로 내보낼수없어.


경비원 : 이봐 너 뭘...


카야마 리카 닮은 사람 : 어리석은 새끼! 아베노! 죽어! 돼지새끼! 어리석은 새끼! 아베노! 죽어!



오늘도 16명의 만화가들에게 팬레터를 보냈다.jpg 팬레터




(황당실화)관보를 통해보는 긴급조치 위반 황당사례들 (최근 무죄난)

서울고등법원
제9형사부
판 결
사 건 2013재노20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제18127호 관 보 2013. 10. 28.(월요일)
384
피 고 인 최xx
재 심 청 구 인 피고인
항 소 인 피고인 및 검사
검 사 불상(기소), 최현기(공판)
변 호 인 법무법인 xx
담당 변호사 김xx, 송xx, 신xx, 윤xx
재심대상판결 서울고등법원 1976. 11. 18. 선고 76노1778 판결
원 심 판 결 서울지방법원 수원지원 1976. 7. 19. 선고 76고합80 판결
판 결 선 고 2013. 10. 22.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피고인에 대한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이 유
1. 사실관계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가. 피고인은 별지 기재와 같은 공소사실로 기소되었는데, 서울지방법원 수원지원은 1976. 7. 19. 선고
76고합80 사건에서, 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다음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
조치(이하 ‘긴급조치 제9호’라 한다)를 적용하여 피고인에게 징역 2년 및 자격정지 2년을 선고하였다.
나. 피고인이 항소함에 따라 서울고등법원은 1976. 11. 18. 선고 76노1778 사건에서 원심판결을 파
기하고 피고인에게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이하 ‘재심대상판결’이라 한다)하였고, 위 판결
은 대법원의 상고기각판결로 1977. 2. 22. 그대로 확정되었다.
다. 피고인은 2013. 3. 5. 이 사건 재심청구를 하였고, 이 법원은 2013. 7. 4. 긴급조치 제9호가 당초
부터 위헌⋅무효이기 때문에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고 판단하여 재심
개시결정을 하였으며, 그 이후 항고기간 내에 적법한 항고의 제기가 없어 재심개시결정은 그대로 확
정되었다.
2. 항소이유의 요지
가. 피고인
(1) 사실오인 주장
피고인은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2) 양형부당 주장
원심의 형은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
나. 검사
원심의 형은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
제18127호 관 보 2013. 10. 28.(월요일)
385
3. 판단
피고인 및 검사의 주장에 관한 판단에 앞서 직권으로 살펴보면, 재심이 개시된 사건에서 범죄사실
에 적용하여야 할 법령은 재심판결 당시의 법령이다. 따라서 법원은 재심대상판결 당시의 법령이 변
경된 경우에는 그 범죄사실에 대하여 재심판결 당시의 법령을 적용하여야 하고, 폐지된 경우에는 형
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를 적용하여 그 범죄사실에 대하여 면소를 선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형벌에 관한 법령이 재심판결 당시 폐지되었다 하더라도 그 ‘폐지’가 당초부터 헌법에 위배되어 효력
이 없는 법령에 대한 것이었다면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이 규정하는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의 무
죄사유에 해당하는 것이지,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의 면소사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10. 12. 16. 선고 2010도5986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그런데 구 대한민국헌법(1980. 10. 27. 헌법 제9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유신헌법’이라 한
다) 제53조에 규정된 긴급조치권에 근거하여 발령된 긴급조치 제9호는,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
권을 침해한 것이다. 따라서 긴급조치 제9호가 해제 또는 실효되기 이전부터 이는 유신헌법에 위반되
어 위헌⋅무효이고, 나아가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하여 침해된 기본권들의 보장 규정을 두고 있는 현행
헌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헌⋅무효임이 분명하다(대법원 2013. 4. 18.자 2011초기689 전원합의체 결
정 참조).
결국,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 제7항, 제1항, 제2항을 적용하여 공소가 제기된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의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한다. 따라서 피고
인의 나머지 주장에 대하여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피고인에 대하여는 무죄를 선고하여야 한다.
이와 달리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긴급조치 제9호의 위헌성에 대
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4. 결론
그렇다면 원심판결은 앞서 본 파기사유가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2항에 의하여 이를 파기
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 요지는 별지 기재와 같은데, 앞서 판단한 것처럼 위 공소사실은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한다. 따라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하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형사소송법 제440조에 의하여 피고인에 대한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재판장 판사 김주현
판사 허일승
판사 조찬영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피고인은 1968. 2. 25. 경기 오산읍 소재 오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9. 3. 1. 연세대학교 신학과에입학하고 동년 육군에 입대, 1972. 3. 31. 육군 상병으로 제대한 후, 동년 4. 1. 동 대학교 신학과에 복학 중 1974. 9. 중순 일자 미상 민청학련 사건에 관련되어 비상고등군법회의에서 국가내란예비음모죄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아 영등포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1975. 2. 15.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출소한자인바,
제18127호 관 보 2013. 10. 28.(월요일)
386
1. 1975. 6. 초순 일자불상 14:00경 서울 종로구 소재 경복궁 xxx 휴게실에서, 동 대학교 민청학련관련 학생으로서 형집행정지로 출소한 동료 서xx, 김xx, 김xx 등에 대하여, “포드 미국대통령이내한 시 박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하여 구속 학생을 석방하라고 요구하였고, 박대통령은 늦어도 금년 8월 이내로 정권을 내어 놓는다. 후임내각도 다 정해져 있다. 정일권 국회의장이 외국을 순방한 것도대통령의 망명처를 물색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2. 1976. 2. 중순 일자 미상 23:40경 같은 ○○○ 경영의 보리수 다방에서 동인에 대하여, “박대통령이 물러나고 망명하려고 하였고, 1975. 6. 정일권 국회의장이 외국을 순방하며 망명처를 물색하고 왔으며 후임내각도 결정되었다.”라고 말하여, 각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한 것이다.


옮긴이 주 : 이렇게 어이없는 이유로 유죄를 받았고 최근 무죄받은 사례중 황당한 일화만 올려보겠다



서울고등법원
제9형사부
판 결
사 건 2013재노47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중략)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피고인은 1975. 7. 22. 11:40경 충남 장항읍 소재 노상에서 공소외 강○○이 운전하는 △△△호 택시를 타고 서천면 군사리 소재 서천지서 앞까지 가는 도중 운전수와 동 택시에 동승한 공소외 이○○(30세, 남), 동 노○○(36세, 남) 부부가 듣는 자리에서 “박정희 도당이 하는 정치가 잘하는 것이 뭐냐?”, “박정희도 당과 청와대를 때려 부숴야 한다.”, “김종필, 신직수 이것들이 뭣 하는 것들이냐?, 병신이다.”, “왜 동족끼리 잡아먹으려고 하느냐?”, “서울법대가 어떻게 됐나 알고 있느냐?”, “육영수 죽은 것 봐라.”, “한국경제의 파탄은 박정희 도당에게 책임이 있다.”라고 외침으로써 사실을 왜곡하여전파한 것이다.


제18127호 관 보 2013. 10. 28.(월요일)



서울고등법원
제10형사부
판 결
사 건 2013재노87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중략)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1975. 5. 13. 공포 시행된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에 의해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와 동 긴급조치를 공연히 비방하는행위는 금지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1975. 8. 중순 서울 종로구 화신 백화점 앞 노상에서 상피고인 김○○으로부터 “얼마 전 대통령이헬리콥터를 타고 전방 시찰을 나갔는데 영접하는 군 고위층에서 영접비행을 가장하여 헬리콥터로 대통령이 탄 헬리콥터를 충돌시켰으나 대통령은 위장기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무사했고 대신 경호원들이 탄 헬리콥터와 군 헬리콥터가 서로 충돌되어 모두 추락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말이 근거 없는 풍설이라는 정을 알면서도 1976. 6 초 일자불상 11:00경 위 통일연구협회 사무실에서 공소외 김○○에게 “박 대통령이 지난 7월 전방 시찰 때 모 군단장이 헬리콥터를 타고 영접을 가장하여 박 대통령이 탄 헬리콥터와 충돌한다는 것이 경호원이 탄 헬리콥터와 정면 충돌하여 2대가 동시에 추락함으로써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였다.”고 말하여 유언비어를 유포하였다.

서울고등법원
제7형사부
판 결
사 건 2013재노125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중략)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에 재학 중, 1975. 9. 29. 16:00경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자대학교 앞 이삭다방에서 이형랑으로부터 김지하의 양심선언문 사본을 교부받고, 그 내용이 사실을왜곡하고 반정부운동을 선동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같은 해 10. 2. 14:00경부터 같은 달 9.까지 서울 종로구 소재 정경임의 자취방에서 미리 구입하여 온 필경용지에 김지하 작성의 양심선언문 전문을 필경하고 정경임은 서문으로 “김지하 양심선언문을 국내에서는 감추어져 있고 보복이 두려워 발표되지 않았으며 김지하는 공산주의자임을 자인케 하는 허위진술서를 쓰도록 강요받았고 이선언문은 세멘트 바닥에 칫솔로 새겼다“는 내용을, 피고인은 후문으로 ”강압으로 학원에서 쫓겨난 수백명의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다. 학생들은 현정부의 폭력과 억압정치에 대해 침묵만 지킬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내용을 각 게재한 다음 위 유인물 200부를 필경 등사하여 같은해 10. 10. 이형랑, 정경임으로 하여금 이화여자대학교 및 서울대학교에 95부를 배부하도록 하고, 피고인은 연세대학교의 화장실, 복도, 벤치 등에 40부를 각 배포함으로써 정치관여 행위를 하고 사실을 왜곡한 표현물을 제작․배포하였다.

제18160호 관 보 2013. 12. 12.(목요일)


제18160호 관 보 2013. 12. 12.(목요일)

서울고등법원
제5형사부
판 결
사 건 2014재노18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피고인은,
1. 1975. 8. 초 일자불상 11:00경 서울 종로구 xxx사무실에서 공동피고인김xx으로부터 “며칠 전 대통령이 헬리콥터 편으로 전방시찰을 나갔는데 영접나온 군 헬리콥터가 대통령의 헬리콥터를 들이받아 2대가 떨어진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내용의 헬리콥터 추락사건에 관 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근거없는 풍문이라는 정을 알면서도 같은 날 13:00경 서울 종로구 xxx 연구소에서 공소외 김xx에게 ”박대통령이 헬리콥터로 전방을 시찰중 전방 모 군단장이 대통령을 죽이고 자기도 죽으려고 헬리콥터로 영접을 가장 비행하여 대통령 경호원이 탄 헬리콥터를 대통령이 탄 헬리콥터로 오인하여 충돌, 2대가 동시에 추락함으로써

탑승원 전 원이 사망한 사건이 최근에 발생하였다“고 말한 것을 비롯하여 같은 날 14:00경 서울 종로구 공평동 소재 약속 다방에서 공동피고인 이xx 등에게, 같은 날 15:00경 서울 종로구 광화문 소재 xxx 다방에서 공소외 xxx에게 같은 내용의 말을 함으로써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2. 같은 해 10. 1. 12:30경 서울 종로구 공평동 소재 xx기원에서 공동피고인 최xx으로부터 “2, 3일전 육사 부근에서 총격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그것은 육사생도가 대통령을 저격하려다가 미수에 그친사건이었다, 그래서 오늘 국군의 날 행사의 경비가 전례없이 삼엄하다”는 내용의 육사생도의 대통령저격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말이 근거 없는 풍문이라는 정을 알면서 같은 날 13:00경 서울 종로구 광화문 소재 xx 다방에서 공소외 박xx에게 “영동고속도로 준공식장에서 의장대로 참석한육사생도 한 사람이 장총으로 각하를 저격했으나 미수에 그친 사실이 있다”는 내용으로 전파하여서유언비어를 날조ㆍ유포하고,


3. 1976. 3. 하순 일자불상 11:00경 위 xx 사무실에서 공동피고인 김xx으로부터 미국 프레이저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이 한국의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대한원조(對韓援助)의 유보 등을 논의했다는 내용의 미국의회의 대한원조 논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말이 왜곡된 사실이라는 정을 알면서 같은 날 11:30경 서울 종로구 공평동 소재 xx차집 앞 노상에서 공소외 박xx에게 미국 상하 양원에서 한국 인권문제 합동회의가 개최되었는데 한국 정부가 인권회복을 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전원 철수시킨다고 만장일치로 가결되었고 그 결의문은 양원 의장 특사가 소지하고 일주일 이내에 내한하여 한국 정부에게 60일 기한부로 답변을 요구하는 내용이니 정부는 궁지에 몰릴 것이다“라는 취지로 전파하여서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고 다시 같은 날 14:00경 서울 종로구 종로2가 소재xx 다방에서 공동피고인 이경식 외 2인에게 같은 내용의 말을 전하고 ”박대통령은 물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은 한국에서 손을 떼게 되고 김일성의 남침으로 적화된다“고 덧붙어 말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였다.

서울고등법원
제2형사부
판 결
사 건 2014재노39 대통령긴급조치위반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우리 정부가 총력안보의 기틀을 확고히 하려고 총화유신에 저해되는 요소를 발본색원하기위하여 선포한 대통령긴급조치에 위반하면 아니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74. 5. 22.12:00경 특수절도미수 사건으로 검찰조사를 받기 위하여 서울지방검찰청 구치감 제5호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동소에서 반공법위반으로 입건되어 있는 공소외 고OO이 “이북은 실업자가 없고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무학자가 없다”는 등 북괴를 찬양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듣자 피고인은 생활이가난하여 객지생활을 하다가 어린 나이에 폭행, 특수절도 등으로 조사를 받은 일이 있고 다시 범행을하여 구속되어 있는 등 자신의 불우한 처지가 오로지 현 정부의 잘못된 시책 등에 기인한다고 오신한 나머지 정부에 대하여 불평을 갖고 마치 대통령긴급조치 4호가 무고한 학생을 속박하는 조치인양공소외 이OO, 양OO 등에게 “정부는 필요 없는 긴급조치를 만들어 애매한 대학생 15명을 죽였다”고발설하여 대통령긴급조치 제4호를 비방하는 동시에 마치 위와 같은 허위의 사실이 진실인양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였다.


제18536호 관 보 2015. 6. 19.(금요일)


서울고등법원
제2형사부
판 결
사 건 2013재노91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가정주부로서,
1. 1977. 8. 일자미상경 서울 강남구 소재 이OO의 집에 놀러가서 거실에서 잡담하던 중 그녀에게 “참 희한한 일이 있데이, 탈렌트 정OO네 옆집에 사는 여자가 밤에 남편이 오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복도에서 여러 사람의 구두발자국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까 남자들 3, 4명과 각하 비슷한 분이 정OO네 집으로 들어갔는데 얼마 후 누군가가 벨을 눌러서 나가보니 신사 3, 4명이 찾아와서 ‘아주머니누구 지나가는데 문 열고 보았지요?’ 라고 하기에 그렇다고 한 즉 ‘아주머니 본 걸로만 그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신분증같은 것을 보여주어서 각하 비슷한 분이 대통령이 틀림없구나 생각하였는데 그 후에 차 나가는 소리가 들리드래.“라고 말하고,

이OO가 ”누가 그래요?“라고 반문하자”정OO 옆집에 사는 사람을 내가 잘 아는데 이 말은 그 사실을 본 그 사람과 나와 너밖에 모르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래이, 만일 이런 말을 함부로 하면 정보부에 가서 혼난데이.“라고 함으로써 마치 대
통령이 정OO와 밀접한 교제관계를 맺고 있는 양 허위사실을 날조 유포하고,

2. 같은 해 9. 중순 일자미상경 피고인이 거주하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소재 xx아파트 63동 502호 거실에서 고OO와 이△△ 등과 “탈렌트”에 관한 잡담 중 그녀들이 피고인에게 “정OO가 여기 산다매?”라고 호기심을 표하자 “정OO 옆집에 사는 사람이 밤 12시경에 복도가 시끄러워서 밖을 내다보니대통령 비슷한 분이 정OO 집으로 들어가시더래, 그래서 혹시 잘못 보았나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하고있는데 누가 벨을 눌러서 나가본 즉 어떤 남자가 찾아와서 '조금 전에 누구를 보지 아니하였느냐, 거기에 대해서 일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달라'하고 가더래, 그래서 그 부인이 잘못 본 것이 아니고확실히 대통령이 다녀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대.”라고 하여 마치 대통령이 정OO와 밀접한 교제관계를 맺고 있는 양 허위사실을 날조 유포한 것이다.

제18234호 2014. 3. 31.(월)
서울고등법원
제12형사부
판 결
사 건 2014재노60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320
1. 1975. 10. 1. 11:00경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번호불상 영업용 택시를 타고 신촌 방면으로 가던 도
중 성명미상 운전수로부터 “2, 3일전 육사 부근에서 총격사고가 있었다.”는 말을 듣고 그 말이 전혀
근거 없는 풍문에 불과한 것임에도, 육사 부근에서 총격사건이 발생하였다면 이는 육사생도가 대통령
을 저격한 사건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여 동일 12:50경 서울 종로구 공평동 소재 신일기원 내에서 전
우성에게 “2, 3일전 육사 부근에서 총격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그것은 육사생이 대통령을 저격하였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었다. 그래서 오늘 국군의 날 행사의 경비가 전례 없이 삼엄하다.”라고 말하여 유
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고,
2. 1976. 9. 초 일자불상 10:00경 서울구치소 7사 10 방 안에서 재감자 이달, 조○○ 등 10여명에게
“김종필의 인기가 자꾸 높아지니까 대통령이 그를 거세한 것이다.”라고 말하여 마치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 간에 암투가 있었던 양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고,
3. 같은 해 9월 중순 일자불상 18:00경 위 감방 안에서 위 이달 등 재감자들에게 “8. 18. 판문점 사건
과 관련하여 지금 키신저가 극비리에 한국에 와 있다.”고 말하여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였다.

제18414호 관 보 2014. 12. 22.(월요일)

서울고등법원
제3형사부
판 결
사 건 2014재노27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3.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이 1977. 10. 4. 16:00경 광주시 금남로3가 번지미상에 있는 카xx 다방에서, 공소외 정모,동 김모, 동 정모 등과 이야기를 하던 중 동인들에게 전 xx건설 사장인 최xx은 전세비행기로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외화를 낭비하고 그 나라 국법으로 금하고 있는 외도를 한 것이 탄로가 나서 우리 정부에 항의를 하여 왔기 때문에 최 총리가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사죄를 하였으며, 그와 같은 사실을 박 대통령이 알고 최xx을 xx건설 사장으로부터 물러나게 하였는데, 이는 최xx의 전처인 xx당 국회의원 신xx의 딸이 박 대통령과 자주 만나 안방정치를 하여 그렇게 된 것이라는 취지의 사실무고인 발언을 함으로써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한 것이다.


제18394호 관 보 2014. 11. 24.(월요일)


서울고등법원
제8형사부
판 결
사 건 2011재노15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3.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1977. 2. 10. 11:30경 춘천시 운교동 xxx 소재 xxx사무실에서 같은 지부장 김xx, 제일은행 예금담당 대리 박xx 등에게 ‘금년도 서해안 섬에 간첩 60명이 침입하여 그중 3명이 자수코자 하였으나 2명은 이에 반대하여 그 중 1명이 간첩 1명을 사살하고,혼자서 자수하기 위하여 도서 예비군을 찾아가 “내가 북에서 내려온 사람인데 자수하겠다.”고 하자“네가 무슨 간첩이냐, 네가 간첩이면 내가 보상금 150만 원을 타먹겠다.”라고 하면서 농담으로 넘기고일축하기 때문에 다시 그 섬 면장에게 찾아가 자수하여 5시간 만에 예비군이 출동하여 보니 침입하였던 간첩은 없었으며 예비군이 무력하다.’라고 발설하여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였다.


서울고등법원
제8형사부
판 결
사 건 2011재노118 대통령긴급조치제1호위반
 

3.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긴급조치 제1호는 부당한 처사라고 단정하여 이 조치를 비방하고 계속 근거 없는 헛소문
을 날조·유포하겠다는 결의 아래,

가. 1974. 1. 9. 10:40경 피고인의 집 방안에서 서울 동대문구 배○○(남, 25세)에게 “신문을 보았느냐,박정희가 꼭 세 번 터트리는데 삼선개헌, 10·17 조치 그리고 이번에, 이것은 다 새 나라가 세워지기위해서 현정권이 무너지기 위한 징조입니다. 개헌청원서명운동을 내버려두면 개헌이 되는 것이 틀림없고 그렇게 되면 정권을 뺏길테니까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총칼로 이렇게 누르는 것은 일을빨리 성사시키기 위하는 것 밖에 안 됩니다.”라고 말하여서 대통령긴급조치를 비방하고,나. 같은 해 2. 3. 11:00경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로타리 부근 노상에서 조□□(남, 49세) 부부 외 약10여 명에게 확성기를 통하여 “현 정부가 부정부패해서 공화당이 망하게 된다. 또한 박정권도 망한
다. 현 정권이 동해 어로저지선을 일본에 팔아먹었다. 군대를 가지 말라. 군대를 가게 되면 중동전쟁에 나가서 죽게 된다.”라고 말함으로써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하였다.

제18067호 관 보 2013. 7. 26.(금요일)

서울고등법원
제5형사부
판 결
사 건 2011재노67 국가안전과공공질서의수호를위한대통령긴급조치위반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피고인은 1977년도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일정한 직업이 없이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시골 출신 학생들의 숙식을 위하여 제공한 서울 용산구 소재 ○○에서 기거하고 있던 자인바,
1977. 10. 30. 19:00경 한신대학교 1년에 재학 중인 신○○에게 위 서울 용산구 소재 ○○에서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이○○, 이○○, 김○○ 등이 모인 자리에서 같은 해 10. 25. 연세대학교에서 있었던 학생소요시 학생이 사망하거나 다쳐서 중태에 빠진 사실이 없음에도 “연대학생이 반정부 데모를 하다가 기동경찰관에 의해 1명이 사망하고 1명은 최루탄에 눈을 맞아 실명되어 중태에 빠져있다고 하더라”라고 말하며 유언비어를 유포한 것이다.

서울고등법원
제5형사부
판 결
사 건 2013재노4 공문서부정행사등
 

공소사실의 요지 (유죄부분)
피고인은 원적지인 전북 정읍군 감곡면 xxx에서 망 김xx의 2남 4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여, 1945.경 xx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원적지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1948. 6. 7. 육군에 사병으로 입대한 후 1951. 12. 22. 육군 보병학교 갑종 간부과정을 마치고, 소위로 임관한 이래 헌병장교로 근무하다가 1973. 8. 31. 육군 중령으로 의원 예편하고, 1975. 7. 13.경부터 1977. 3. 7.경까지는 재단법인xx공원 이사로 재직하였던 일이 있는 자로서 위와 같이 군에서 예편된 후 자기와 함께 군에서 근무하던 동기들이 많이 공직에 등용되었음에도 자신은 공직에 등용되지 못함에 대하여 열등의식을 갖고 있던 중, 재단법인 xx공원(이하 ‘xx공원’이라고만 한다) 상임이사로 재직하면서 그 직원들에게세상에 알려지지 아니한 사실을 많이 아는 것처럼 가장하여 피고인의 위신을 높일 것을 기도하고,

1. 1976. 7. 9. 10:00경 서울 종로구 종로x가 xx 소재 xx공원 이사장실에서 xx공원 직원 한xx(35세)에게 “이거 봐, 윤xx 알지, 그게 대통령 세컨드(첩이라는 뜻)이야”라고 허위사실을 말하며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2. 같은 달 일자불상 12:00경 서울 종로구 종로6가 소재 ‘xx집’이라는 대중식당 부근 노상에서 xx공원 직원 김xx(31세)에게 “1971년도 김대중이 출마하였던 대통령 선거는 부정선거를 하여 박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1975. 12.경 서울 명동성당의 선언서 사건은 당국에서 조작했을 것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하여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3. 같은 해 8월 초순 일자불상 12:00경 xx공원 이사장실에서 용인공원 이사장 최xx(48세)에게“박 대통령이 재계와 군을 꽉 잡고 있으니 영구집권을 하지 않겠느냐,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을 것인데 재정적인 봉쇄를 하고 독재를 하니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느냐, 공정한 선거였다면 내가 지금 경호실장이 되어 천하를 호령할 터인데 사회가 썩었다”고 허위사실을 말하며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4. 같은 달 초순 일자불상 11:00경 xx공원 직원사무실에서 위 한xx에게 “박○○가 재계, 학계,군을 다 손아귀에 쥐고 있으니 감히 누가 발을 붙이겠느냐, 박○○란 놈이 불법으로 정권을 잡더니맛을 붙였다. 박○○가 부정선거로 대통령이 되었다. 부정선거가 아니었다면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고, 나는 경호실장이 되기로 했었다. 박○○가 김대중을 죽이려 해도 일본이나 미국에서 밀어주고 있기 때문에 못 죽인다. 김대중 납치사건이나 명동사건은 다 조작다.”라고 허위사실을 말함으로써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5. 같은 해 10. 일자불상 11:00경 xx공원 직원사무실에서 위 한효석에게 “자네 총통이라는 거 알아?”라고 반문하여 한xx이 “장개석 총통 말입니까?” 하자 “그거야(박○○) 평생 해 처먹으려고 그러는 거야”라고 하여 다시 한xx이 “지금 유신 아닙니까, 불평불만 하지 맙시다.”라고 하자 “유신 좋아하네 저희들끼리 마음대로 만들고 마음대로 고친다. 조그마한 놈이 정치한다.”라고 허위사실을 말하여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6. 같은 달 일자불상 10:00경 xx공원 이사장실에서 xx공원 상무이사 홍xx에게 “박○○는 총통으로 평생을 해 처먹으려고 했는데 죄가 많아서 죗값을 받을 것이다. 부처님 말씀에도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있지 않으냐.”고 허위사실을 말하여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7. 같은 해 11. 일자불상 20:30경 서울 중구 청계천4가 소재 ‘xxx’이라는 호프집에서 위 홍xx에게 “윤정희는 박○○가 데리고 살았는데 말이 많으니까 외국으로 보냈다”라고 허위사실을 말하여유언비어를 날조하고,

8. 1977. 1. 초순 일자불상 12:00경 xx공원 사무실에서 용인공원 여직원 박xx(21세)에게 전항과 같은 취지의 허위사실을 말하여 유언비어를 날조한 것이다.

서울고등법원
제5형사부
판 결
사 건 2013재노13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본적지인 서울 종로에서 부 이xx의 2남으로 출생, 1966년에 포천 xx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이때부터 1971년경까지 xx여객 xx영업소 매표원 등으로 종사하다가 1971년부터 1973년까지방위소집되어 근무를 마치고, 그 후 현재까지 버스 조수 등으로 생활을 영위하여 오고 있는 자인바,1977. 1. 20. 20:00경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소재 xx 여인숙 내실에서 최xx(20세)과 성명불상 여인들 및 그 집에 하숙하고 있는 육군 제215보안부대 정xx이 있는 자리에서 정x인에게 “미국 케네디 의원과 김대중이 친한 관계로 카터 민주당 대통령이 취임하면 3.1 명동 사건으로 구속된인사가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1977. 4.경이면 풀려날 것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5․16 이후 한 번도교체된 일이 없이 장기집권을 하고 있으며 향토예비군, 학도호국단, 유신헌법 등은 장기 집권을 위해만들어졌으며 새마을 반상회, 사랑방 좌담회 등은 내년에 있을 선거 전략이며, 동아일보 광고 해약사태는 언론탄압 정책이고 6군단 보안부대에서 동아일보 2내지 3부를 보는 것은 정보수집을 위해서 보는 것이며, 야당인사가 선거운동을 하면 군 보안부대에서도 간섭하고 요즘 말 한마디 잘못하면 정보부에 끌려가서 죽도록 매를 맞고 다리병신이 되며, 서울 시내 높은 빌딩은 외국 차관으로 지은 재벌기업체의 개인 소유이고, 신민당 전당대회 때의 난투극은 공화당에서 자금을 대어 신민당을 분열시켜당세를 약하게 하려고 하는 짓이다.”라고 발설하여서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한 것이다.

서울고등법원
제5형사부
판 결
사 건 2013재노41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피 고 인 망 김기곤 (331128-*******, 2001. 4. 11. 사망)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본적지인 전북 완주군 조천면 소재 xx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노동에 종사하다가 1977. 9. 7. 서울지방법원 성동지원에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및 공무집행방해죄로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으면서 서울 성동구 소재 명화시장 씨동 22호에서 “xxx”라는 상호로 아동복 장사를 하는 자로서,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할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1978. 1. 10. 20:00경 서울 중구 을지로5가에서 귀가하기 위하여 성남시에 거주하는 김○○의 성명불상 승객 3명과 같이 유○○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성남시로 가는 도중 위 김○○과 유○○ 등에게 “금년은 대의원 선거가 있는데 대의원은 선출해서 무엇하는 것이요”, “선출해 본들 꼭두각시놀음이 아니요”, “밑의 놈들이 헌법을 고쳐 유신헌법으로 조작하여 만들어 놓아 민주전선이 유신헌법 밑에서 억압을 당하여 발간이 중단되었다가 오늘 다시 발간되었다”, “박○○이 대통령으로서 일은 많이하였지만, 그 밑의 놈들이 헌법을 고쳐 유신헌법을 조작하여 만든 것이다, 그런데 대의원을 뽑아서무얼 하는 거냐, 해본들 다 꼭두각시놀음이다”라는 등의 말을 수회 반복하여 유언비어를 날조․유포 하고,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한 것이다.


제18105호 2013. 9. 24.(화)


서울고등법원
제4형사부
판 결
사 건 2013재노112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성남시 신흥동 소재 xx교회 목사로 부임하여 종사하고 있는 자로서 1977. 1. 21. 10:30경
서울 을지로3가 소재 xx다방에서 성남시 xx교회 집사 이OO, 황OO을 만나 서로 인사를 교환하고 마주 앉아 동인들에게 우리나라의 기독교계의 부패상과 목사들을 비난하는 말을 하던 끝에,

가. 정부에서는 정부를 반대하거나 비협조적인 목사들을 다 연행해 가서 주먹만 들어도 위협에 못이겨 손들고 또 고문에 떨어지지 않는 자는 통일교회를 앞장 세워 미인계를 써서 정혹하기 때문에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목사들이 없다.

나. 육영수 여사가 8.15 광복절 식장에서 저격을 받았다고 세상에 공개되었지만 사실은 박정희 대통령이 정권연장을 위하여 해치운 것이다. 그 이유는 육영수 여사가 민심을 파악하고 해야 할 것을수차 권유하므로 해치운 것이다.
다. 장OO가 모기관에 연행되어 갔다가 나왔는데 그 곳에 다녀온 사람은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죽는데, 그 전에 장준하가 입을 벌릴까 봐 겁이 나서 해치워 놓고 마치 교통사고로 죽은 것 인양 위장하여 보도한 것이다.
라. 나는 대통령이 청와대 임OO씨를 통하여 대통령 고문이 되어 달라고 해도 반대했고, xx선교회 활동을 위해 2억원을 준다고 해도 거절했다.

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고 사실을 왜곡 전파한 것이다.



제18247호 관 보 2014. 4. 17.(목요일)

서울고등법원
제1형사부
판 결
사 건 2011재노133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명예훼손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원적지인 충남 보령군 오천면 오포리 xxx번지에서 망부 종xx의 장남으로 태어나
1945.
3. 원적지 소재 xx초등학교 6년을 졸업하고,
1950년 xx농고를 졸업, 1954. 3. xx대학교 법과를
졸업한 후 동년 3월부터 1956년 3월까지 서울 xx고등공민학교 교감,
 1956. 3.부터 1957. 2.경까지 서
울 xx여자상업학교 교무주임,
 1957. 3.부터 1958. 5.까지 xx대학교 xx연구소에 근무하다가
1960. 10.부터 1962. 8.까지 xx당 보령군 당위원장,
1962. 8.부터 1963. 8.까지 xx당 보령당위원장,
1964. 8.부터 1973. 1.까지 xx당 평택군 당 부위원장,
1973. 2.부터 1974. 6.까지 xx당 유택형 선거사무장,xxx대표위원 등으로 활약하던 자로

 현재 xx 어린이집이라는탁아소를 경영하고 있는 자인바,

현하 대한민국은 북괴의 남침 위협에 직면하여 3천 5백만 국민의 안전과 번영을 위하여 그 위협으로부터 국민과 국가를 보호하고 내일의 번영된 대한민국을 건설 후세에 대한 떳떳한 조상이 되고 저 온 국민이 유신이념 하에 총화단결하려 나가고 있고 그러한 숭고한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일부 몰지각한 불온분자들의 준동을 방지하고 국가 안전보장을 달성하고자 대통령 긴급조치를 선포하여 국가 질서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이에 위반하는 언동을 하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지실함에도 불구하고,

1976. 12. 24. 15:00경 평택군 팽성면 xx리 xx번지 소재공소외 정xx 46세의 집 내실에서 동인의 아들 돌잔치에 참석한 공소외 이xx 59세 외 4명 등이 모여있는 가운데에서 동 이xx이 산업시찰을 다녀온 바 있는 xxx운동협의회 xx지구 회장 차xx의 시찰담을 이용하면서, 국가 경제 건설이 눈부시고 박정희 대통령이 유능하다는 취지의 발언을하자 피고인은 이를 반박하면서 그것은 국민의 혈세로서 부분적인 전시 효과를 노린 것이지,

청년운동협의회의 회원에게 융숭한 대접을 하며 시찰을 시켜주는 것은 환심을 사기 위해 박정희가 꼬시는것이다. 전 국무총리 김종필은 돈이 없던 일개 장교로서 권력을 잡자 국유지를 평당 10원에 불하받아이를 20원에 은행에 담보하고, 대출받는 등의 방식으로 하여 충남 서산에 340만 평의 목장과 제주도에 광역한 밀감 농장 등을 마련하여 부정치부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혁명동지인 이학수 그리고 백승빈 등에게 외자도입 특혜를 주어 치부를 해서 그만두어도 평생 먹을 것을 장만했다고 주장하면서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현 유신정권을 꺼꾸러뜨려야 한다. 유신정부를 꺼꾸러뜨리려면 미국의 헌법과 같이 민주주의 방식에 의한 선의의 정권교체 재도로 유신 헌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주장함으로써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고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함과 동시 대한민국의 헌법 개정을 선전하였다. 끝.
제18123호 관 보 2013. 10. 22.(화요일)
서울고등법원
제10형사부
판 결
사 건 2013재노87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1975. 5. 13. 공포 시행된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에 의해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와 동 긴급조치를 공연히 비방하는행위는 금지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1975. 8. 중순 서울 종로구 화신 백화점 앞 노상에서 상피고인 김○○으로부터 “얼마 전 대통령이헬리콥터를 타고 전방 시찰을 나갔는데 영접하는 군 고위층에서 영접비행을 가장하여 헬리콥터로 대통령이 탄 헬리콥터를 충돌시켰으나 대통령은 위장기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무사했고 대신 경호원들이 탄 헬리콥터와 군 헬리콥터가 서로 충돌되어 모두 추락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말이 근거 없는 풍설이라는 정을 알면서도 1976. 6 초 일자불상 11:00경 위 xxxx 사무실에서 공소외 김○○에게 “박 대통령이 지난 7월 전방 시찰 때 모 군단장이 헬리콥터를 타고 영접을 가장하여 박 대통령이 탄 헬리콥터와 충돌한다는 것이 경호원이 탄 헬리콥터와 정면 충돌하여 2대가 동시에 추락함으로써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였다.”고 말하여 유언비어를 유포하였다.


서울고등법원
제7형사부
판 결
사 건 2013재노125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에 재학 중, 1975. 9. 29. 16:00경 서울 서대문구 xx동 xxx대학교 앞 xx다방에서 이형랑으로부터 김지하의 양심선언문 사본을 교부받고, 그 내용이 사실을왜곡하고 반정부운동을 선동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같은 해 10. 2. 14:00경부터 같은 달 9.까지 서울 종로구 소재 정xx의 자취방에서 미리 구입하여 온 필경용지에 김지하 작성의 양심선언문 전문을 필경하고 정xx은 서문으로 “김지하 양심선언문을 국내에서는 감추어져 있고 보복이 두려워 발표되지 않았으며 김지하는 공산주의자임을 자인케 하는 허위진술서를 쓰도록 강요받았고 이 선언문은 세멘트 바닥에 칫솔로 새겼다“는 내용을, 피고인은 후문으로 ”강압으로 학원에서 쫓겨난 수백명의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다. 학생들은 현정부의 폭력과 억압정치에 대해 침묵만 지킬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내용을 각 게재한 다음 위 유인물 200부를 필경 등사하여 같은해 10. 10. 이xx, 정xx으로 하여금 xxx대학교 및 xx대학교에 95부를 배부하도록 하고, 피고인은 xx대학교의 화장실, 복도, 벤치 등에 40부를 각 배포함으로써 정치관여 행위를 하고 사실을왜곡한 표현물을 제작․배포하였다.

제18160호 관 보 2013. 12. 12.(목요일)

미국의 정당방위는 형사법 한정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1984_New_York_City_Subway_shooting


1984년 지하철 난사 사건


베른하르트 괴츠는 강도들에게 구타당하고 돈을 뺏긴뒤에


경찰에 신고했으나 경찰이 1명만 잡았다 풀어주자 권총을 샀다


5명의 강도들(저번과 다른 사람들)을 만났는데


괴츠는 또 협박당하자 권총을 쏴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뉴욕 지하철의 막장 치안에 분노해서


괴츠를 지지했다.


괴츠는 감옥에서 8개월 살다나왔다.


하지만 민사에서는 털려서 돈을 존나게 토해야했다.


그래서 괴츠는 파산했다


미국은 형사는 봐줘도 민사는 얄짤없다


1. O.J 심슨도 형사 무죄, 민사 털림


2. 핫토리 요시히로 사건 용의자도 형사처벌없고 민사 털림



http://wonyerin.egloos.com/602980


당시 사진이 담긴 블로그





할로윈에 모르는 사람의 집에 찾아갔던 일본 소년 핫토리 요시히로(일본에서 미국으로 유학갔음)는

미국 사람이 쏜 총에 맞아죽는다

미국 사람은 핫토리 요시히로를 침입자로 생각했다한다.


형사는 정당방위

민사에서는 탈탈 털림




대한민국 아파트 史


권중희의 안두희 구타사건 판결문.jpg









요약


사회부적응자는 실체도 없는 민족정기와 음모론에 빠진다


80년대를 뒤흔든 권인숙 성고문 사건 판결문.jpg(원심)


정작 성고문을 목격한 증인은 없는데도 유죄가 나왔습니다. 

박근혜 편지사태가 뭔 문제인가

이 기사가 나온 지 겨우 3일 만에 2017년 2월 14일 김정남이 암살된 것으로 추정된 사건이 발생하며 해당 기사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3. 문제점[편집]

요약하자면 국보법 폐지를 막기 위해 거리로 나오기까지 했던 북풍몰이, 안보팔이의 달인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지켜낸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박적박이다.

  • 이중잣대
    박근혜 정부와 그 지지층은 평소 자신의 반대파들에 대해 자주 종북몰이, 공안몰이를 하며 각종 공작을 한 경력이 있는데, 정작 본인은 북한에 이런 편지를 보내는 이중적인 모습은 논란이 되기에 충분하다. 새누리당 비박하태경 의원[4]은 "자나깨나 종북척결만 생각한다는 김진태 의원님 뭐하십니까. 한마디 하셔야죠" 라며 강성 친박계 의원인 김진태를 비난했다. #

  • 국가보안법 위반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정동영도 편지가 북한으로 갔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하는데, 이 경우 북한 주민과 접촉할 때는 반드시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는 국가보안법, 교류협력법을 위반한 것이 된다. 이건 정청래 전 의원도 본인 트위터에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간 부분이다. 동아일보. 즉 통일부의 공식 채널을 통하지 않고 북한으로 간 모든 서신-팩스-화물은 국가보안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참고로 국가보안법은 JTBC 썰전유시민, 전원책 듀오가 한 번 짚었듯이 유일하게 의도만 있어도 처벌받는 형법(의 특별법)이다. 대한민국 형법의 모든 조항들은 행위-부작위 두 개만 일차적으로 본다. 의도와는 관계가 없다. 매일경제. 저 편지는 2005년에 보낸 것으로, 국보법상 회합죄의 공소시효는 10년인데 대통령 임기 기간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었므로 편지 건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건 노무현 대통령 때 국가보안법을 폐지 혹은 수정하려고 했을 때 제일 앞장서서 반대를 주장했던 이가 박근혜 본인이었다. 이것이 국가보안법 위반 사항이라면 자기 발등을 찍은 격이다.[5]

  • 김정일 찬양
    북한의 연호인 주체91년을 사용하거나 김정일의 요구를 반영했다고 쓴 것, 남북이 아닌 "북남"으로 쓴 것 등이 문제다. 2002년 남북친선 축구대회 경기 당시, 김정일은 이것을 "북남통일 축구대회"라 불렀고, 참고로 이때 관중들이 태극기를 흔들었다고 심기가 불편해 했던 것은 박근혜였다(당시 국회의원 자격으로 참관했었다). 또한 과거 18대 대선 후보자 토론에서 이정희"남쪽 정부" 발언으로 종북논란이 일었다. 만약 박근혜의 "북남" 언급이 사실이라면, 일개 후보자였던 이정희 때와는 격이 다른 파문이 일어난다. 때문에 당시 방북을 위한 분위기 속에서 '건강을 기원한다' 정도의 말이야 쓸 수 있겠으나, 편지의 뉘앙스는 완벽하게 아랫사람이 고위직의 인물에게 하는 태도로 말하고 있다.

  • 북한에 대한 사대
    북한에서 쓰는 주체연호를 사용하는데, 이는 북한을 사대한다는 뜻을 품는다. 연호는 자주성과 직접 맞물리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연호를 따르는 것은, 곧 그 나라에게 사대한다는 소리다. 단순한 표현의 문제 수준을 까마득히 넘어선다. 괜히 국사시간마다 선생님들이 우리나라가 사용한 독자적 연호에 대해 중요하다며 강조한 것이 아니다. 이때 박근혜는 야당 대표로서 이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책임이 더욱 무겁다.

  • 보낸 시점
    2005년 7월 13일 해당 편지를 보낸 시점이 당시 북한이 핵 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영변의 원자로에서 폐연료봉 인출 완료를 발표한 지 두 달 뒤였다. 때문에 북핵이 위협이라고 강조해 온 것도 무색해졌다.

4. 반응[편집]

  • 정청래 전 의원은 만약 사실이라면 간첩죄라고 하였다. 국민일보.

  • 2016년 12월 17일 한 주갤러가 박사모 카페에 "문재인이 청와대 비서실장일 때 김정일에게 간 편지"라는 식의 제목으로 낚시를 시전했다. 대놓고 사기를 친 건 아니고 잘 읽어보면 '문재인이 보낸 편지'가 아니라 '문재인이 청와대에 있을 [6] 김정일에게 편지'인데 일부러 낚시를 위해 헷갈리게 쓴 것. 본문에는 주어 없이 '이런 편지를 보냈다니 빨갱이'라는 말만 적어놓았다. 글을 쓰며 편지 전문을 실은 게시물을 썼는데, 박사모 회원들이 여기에 낚이는 바람에 당연히 문재인이 보낸 편지라고 오해하고 원색적인 욕설과 함께 비난하는 댓글이 속출했다. 나중에 편지를 쓴 사람이 문재인이 아니라 박근혜 당시 대표였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박사모에서 해당 게시물이 삭제된 상태라고 한다.[7] 그리고 박사모는 인터넷에서 웃음거리가 되었고, 팀킬 레전드박사모는 여전히 편지가 문재인의 것이라고 우기거나 이번 일을 덮어야 한다며 난리를 쳤다. 국민일보 노컷뉴스. 또한 이 사건을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트위터에 올렸다. 동아일보.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큰 웃음 준 박사모에게 감사드린다는 트윗을 남겼다. 중부일보. 또 속았냐

  • 문재인 편지가 아니라 박근혜 편지인 것이 드러나자 박사모 회원들은 "업무상 편지 좀 주고 받은 것 가지고 뭐 이리들 난리냐? 좌파를 소탕하자!!!"며 국보법 위반이라는 명백한 범죄 사실은 외면한 채 내로남불보여주고 있








나무위키 박근혜 편지 사태 항목



북한 조총련 문세광이 박근혜 어머니를 암살했는데도 불구하고

박근혜가 저러는게 오히려 치욕을 감내하는 일이다


나무위키 백범 김구 암살 사건 항목을 반박해보자

1. 개요[편집]

1949년 6월 26일 오후 당시 서울 경교장에 기거하고 있던 백범은 점심식사를 하고나서 서재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는 중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이러한 사건이 일어날 줄은 예상도 못하였으며 이 때까지는 아무 일도 없이 평온하게 지나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시각 경교장에 백범을 알현하고 싶다는 사람이 찾아왔으니 그는 바로 육군 포병사령부 장교인 안두희였다. 안두희는 당시 군복 차림을 하고 경교장에 와서 비서진에게 백범 선생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고 비서진들은 아무런 검문이나 경계없이 안두희를 그대로 백범이 있는 서재로 보내주었다. 그러나 이 때까지 그 아무도 이 자가 백범을 죽이게 되리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하였으며 마침 안두희의 허리춤에 권총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단지 군인이라는 이유로 검문이나 제지없이 통과시키게 된 것이었다. 어쩌면 비서진들의 허술함이 빚은 결과가 포함될 수 있을지도.

이 때 백범은 서재에 있었으며 글씨를 쓰던 중 비서로부터 포병장교가 문안인사를 드리러 왔다며 보고하게 되고 백범은 들어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잠시 후 안두희가 백범 앞에 나타나게 되자 백범에게 먹물을 갈아도 되겠냐고 묻고 백범이 안두희의 모습을 보게 된 순간 안두희는 권총을 꺼내들며 백범을 향해 총을 발포하게 된다.


김구와 안두희는 10분이상 말다툼을 하다가 안두희가 김구를 사살한것이다.

김구와 안두희 대화 시간이 2~3분이라는 비서 주장은 거짓이다.

이유는 공판기에서는 밥을 먹고 있다가 김구가 죽은걸 알았다고 하고

사후 회고록에는 만두국이 나오려는 순간 김구가 죽은걸 알았다고 한다.


이 때 총성을 들은 비서진들이 서재로 달려가보니 백범이 피를 흘린채 쓰러져 죽어있었다.

2. 사건 이후[편집]

안두희는 경교장을 빠져 나가다가 경교장 경비들에게 잡혀서 헌병사령부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백범이 남북협상을 통해서 정치사회에 혼란을 주고 공산주의자들을 자극시키고 찬동시키는 범죄를 저질렀다면서 결국엔 참다못해 백범을 죽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육군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형기가 15년으로 감형되었다.

대통령 이승만은 백범 암살사건은 안두희 개인 단독범행으로 발표했으며 안두희는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백범과 의견충돌을 벌이다가 죽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1년 후 6.25 전쟁이 일어나자 형집행정지로 석방시켜 군에 복귀시켰고 정치권 일각에서 석방논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자 계급을 소위에서 소령으로 특진시켰다.

이후로 안두희는 강원도 양구로 건너가 군납업자로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잠적상태에 있었고 4.19 혁명 이후 진상조사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으나 윤보선 정부 때까지 아무런 논의가 없었고 안두희 본인도 암살사실을 밝히려 하지 않는 등 난항을 겪었다.

이후 안두희는 수감되었지만 6.25 중에 석방되어 오히려 진급했고 이후 정권과 결탁하여 대저택을 짓고 떵떵거렸으나 결국은 몰락하여 백범 암살범이라는 낙인을 받게 되어서 여러 곳에서 암살 및 살해위협을 받아오게 되었고 결국에는 권중희에게 끌려가 납치를 당하기도 하였으나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가 1996년 버스기사 박기서로부터 정의봉[1]에 맞아 결국 죽었다.

이 사건은 현재까지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으며 당사자인 안두희도 사망하게 되면서 풀리지 않은 의문의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오랜 시간에 흘러 한국 사회 전반에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김구 암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의 목소리가 커졌다. 여기에 1992년 드디어 안두희의 육성 증언이 나왔다. 이에 국회는 1993년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약 2년간의 조사 후 위원회는 「백범김구선생 암살진상국회조사보고서」를 작성하였고, 이 보고서는 1995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김구 암살사건은 당시 정부 발표처럼 한국독립당의 노선을 둘러싼 내분 과정에서 안두희가 개인적 차원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이 아니라, 면밀하게 준비·모의되고 조직적으로 역할이 분담된 정권 차원의 범죄 행위였음이 밝혀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구암살사건 [金九暗殺事件]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근거는 ? 배후가 있다면 왜 비서가 거짓말을 했나?

3. 암살의 배후에 이승만이 있다?[편집]

세간에서는 백범과 사이가 좋지 않아진 대통령 이승만이 간접적으로 지시했다는 일설이 있는데, 실제로 심증이 가는 여러 가지 정황적 증거가 나타난다. 아래는 대표적인 여러 가지 심증들이다.

  •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독립운동가 조수앙(조용은)이 경무대로 찾아가 이승만을 만났는데, 이승만은 조수앙에게 "김구가 공산당과 내통하고 있다. 주변에 빨갱이가 있다."라고 모함을 했다.

당시 주한미군철수 운동을 했던 김구는 중화민국 외교관 유어만에게만 북한군이 남한을 향해 침공할것이며 남한군을 이기고 남한을 정복할거라고 말했다.

  • 김구가 암살된 것을 확인한 김구의 비서들이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보다 먼 거리에 있던 군 헌병대가 먼저 도착했다.[2] 결국 헌병대에 막힌 경찰은 안두희를 체포하지 못했고, 안두희는 군 헌병대에 끌려갔다. 당시 헌병 사령관은 김구를 존경하는 장흥 대령이었는데, 사건이 일어난 이후 5시간만에 해임되었다. 이후 이 사건은 오제도와 함께 이승만의 명령을 따라 반민특위를 해체한, 부사령관 전봉덕이 맡게 된다.

그럼 왜 비서가 거짓말했나?

  • 서북청년단 김성주가 술만 마시면 "백범 선생 암살을 누가 했는지 내가 다 알아."라고 말하고 다니다가 체포당하여 재판을 통해 7년형을 구형 받게 되었는데, 이승만은 자신의 오른팔인 계엄사령관 원용덕에게 "김성주는 극형에 처해야 한다."라고 편지를 보냈다. 이승만의 특명으로 김성주는 원용덕의 집 지하실로 끌려가 총살당했다.

이승만은 손원일을 통해 원용덕에게 김성주는 문봉제를 죽이려고 했으니 극형에 처해야하며 법대로 해야한다고 했지

김구와 관련이 없다

  • 당시에 안두희의 상관인 포병 사령관 장은산이 안두희에게 암살을 지시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장은산도 술만 마시면 "내가 안두희 보스야!"라고 말하고 다니다가 친일파 김창룡에게 체포되어 수용된 후 옥사했다. 사인은 자살.

소문말고 근거는?

  • 안두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석방되었고, 2계급 특진을 하며 군에 복귀했다.

6.25 전쟁중이었다.


위의 심증들을 통해 충분한 정황적 근거로 볼 때 '안두희는 이승만의 지시로 김구를 살해하였다'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럼 왜 비서가 시간을 조작하는 거짓말을 한걸까?



백범 김구의 치하포 사건을 다룬 영화가 개봉 예정(10월)






저런 선동을!



자세한건 김구 청문회를 참고해보자


안중근 기념관 사진

첫째짤은 이토 히로부미 부검도입니다







예전에 찍은 풍경들


혐한류 작가 근황을 알아보자.jpg


오늘도 13명의 만화가에게 팬레터를 보냈구나 팬레터

2017년 9월 1일  해외 팬레터 총 13통 보냄(누적 총 190통) -



보수진영에서 광주 5.18을 옹호하니 광주 5.18이 절대 옳은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tock_new2&no=2525213&page=1


dd   자유한국당에서 518도 보수의 공로인걸로 이미 밀고나가기로 했다. 니들도 방향 전환해라. 아니면 대한애국당 지지하던가.    2017/09/01 
dd   홍준표 "5·18 헌법 전문 삽입 당들과 합의하겠다 "http://www.icouncil.kr/news/articleView.html?idxno=39502&rsb=85e91895&utm_source=Rsb&utm_medium=social&utm_campaign=Rsb    2017/09/01 
dd   홍준표 후보, " ‘임을 위한 행진곡’5·18공식 기념곡 지정 찬성”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40615595107497&mobile=Y    2017/09/01 
dd   홍준표, 5·18민주묘지서 "전두환, 주장 자체가 억지"http://m.focus.kr/view.php?key=2017040600111814791#imadnews    2017/09/01 
dd   홍준표 대표 “5.18 주범 전두환·노태우 우리가 처단” 주장“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527852§ion=sc1    2017/09/01 
ㅇㅇ    드립이냐 진심이냐    2017/09/01 
ㅇㅇ    엔두님 고맙습니다    2017/09/01 
dd    518 부정할거면 앞으로 대한애국당이나 지지해라. 이미 한국당은 YS 신한국당의 유지를 이어받아 518특별법제정및 518 민주화운동 규정, 518 주범 처단의 공로를 보수의 공로임을 내세우기로 하였다. 즉 518도 이제 보수의 업적인거다.    2017/09/01 
ㅇㅇ    엔두님 감사합니다    2017/09/01 
ㅇㅇ    엔두님 만수무강하세요    2017/09/01 
ㅇㅇ   '민주화운동' 이라는 명칭의 수정은 필요할듯. 다만 군인 쪽에서 먼저 시작한 것이므로 폭동은 아님    2017/09/01 
ㅇㅇ    먼저 공격 시작한건 시위대들인걸로 알고 있음. 계엄상황에서 시위조차 불법인데 시위하고 돌 던졌으니 시위대가 먼저 공격한거    2017/09/01 
ㅇㅇ    펌)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는 4일 광주에 내려와 5.18민주화항쟁을 기린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한 뒤 "5.18은 민주화운동"이라며 "민주화를 위한 희생이었다"고 말했다.    2017/09/01 
ㅇㅇ    펌)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는 4일 광주에 내려와 5.18민주화항쟁을 기린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한 뒤 "5.18은 민주화운동"이라며 "민주화를 위한 희생이었다"고 말했다.    2017/09/01 
ㅇㅇ    주갤 그래도 안빠들 모임인줄 알았는데 ㅇㅂ 다됐네 ㅋㅋㅋㅋㅋㅋㅋ    2017/09/01 
ㅇㅇ    펌)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는 4일 광주에 내려와 5.18민주화항쟁을 기린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한 뒤 "5.18은 민주화운동"이라며 "민주화를 위한 희생이었다"고 말했다.    2017/09/01 
xxxxx...   지역감정때문에 성역화됨    2017/09/01 
ㅇㅇ   mb도 박근혜도 모든 정치인들은 다 민주화 운동이라 한다.    2017/09/01 
ㅇㅇ   mb도 박근혜도 모든 정치인들은 다 민주화 운동이라 한다.    2017/09/01 
ㅇㅇ   mb도 박근혜도 모든 정치인들은 다 민주화 운동이라 한다.    2017/09/01 
ㅇㅇ   mb도 박근혜도 모든 정치인들은 다 민주화 운동이라 한다.현장에 없어서 우리들도 다 사실을 알수 없는데?    2017/09/01 
ㅇㅇ    우리들중 누가 현장에 있어 정확하게 아는 사람 있냐?    2017/09/01 
ㅇㅇ    난 전두환 말도 다 믿을 수 없다.    2017/09/01 
ㅇㅇ   518은 좌우를 떠나 정치인들은 모두다 그당시 현장에 없었으므로 모를 수 밖에 없다.나도 진짜 진실이 알고싶다.전두환 말도 믿을 수 없다    2017/09/01 
ㅇㅇ    펌)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는 4일 광주에 내려와 5.18민주화항쟁을 기린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한 뒤 "5.18은 민주화운동"이라며 "민주화를 위한 희생이었다"고 말했다.    2017/09/01 
xxx...   dd(볼프64)야, 김대중 내란음모(광주 5.18과 관련된)이 무죄판결문에서도 내란음모 자체는 인정했다    2017/09/01 
xxx법리오인(법리가 바뀌어서 정당행위가 된)으로 무죄된 거야    2017/09/01 
xxx...   펌)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는 4일 광주에 내려와 5.18민주화항쟁을 기린 영화 <화려한 휴가>를 관람한 뒤 "5.18은 민주화운동"이라며 "민주화를 위한 희생이었다"고 말했다. → 광주 표 얻을려고 그러는거야    2017/09/01 
xxx예륻 들어 정치인이 표창원의 한국의 연쇄살인을 근거로 《연쇄살인범들은 대부분 전라도 출신입니다 》이러면    2017/09/01 
xx전라도에서 《 범죄를 잘아는 정치인이니 치안이 좋아지겠다 》 이럴까?    2017/09/01 
xxxxx오히려 《 시방 전라도 사람을 살인마라고 한겨? 슨상님 시대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 이럴것이다    2017/09/01 
보수    홍준표랑 신한국당 후계들이 자유한국당 헤게모니를 다시 쥐었기 때문에. 보수도 이 부분은 방향전환을 할 필요가 있음.    2017/09/01 
보수   YS 보수우파가 직접 518 특별법을 제정하고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음. 살인독재자 노태우,전두환을 처단한것도 YS 보수우파.    2017/09/01 
보수    즉 518의 절반은 보수의 공로임. 근데 보수가 스스로 518을 욕하는건 자신의 업적을 자신이 부정하는 짓임.    2017/09/01 
보수    홍준표가 그래서 이 부분을 들고나온 것. 이제 더 이상 전라도의 보수에 대한 피해망상적 공격에 정당성을 주면 안됨.    2017/09/01 
보수   518도 보수의 업적임. 왜 보수가 호남한테 욕먹어야 되나?    2017/09/01 
보수    난 홍준표의 행보에 무한 지지를 보내는 바임. 아주 올바르게 좌파의 518프레임을 정면으로 파괴해버렸음.    2017/09/01 
ㅇㅇ    ㄴ 준표가 영삼이랑 같이 독재자무리 때려잡던 사람임... 노태우 오른팔 박철언 개박살낸게 홍준표다








http://blog.naver.com/volf64/220708907323


이런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볼프64이다.


볼프64 : 박근혜도 김무성도 광주 5.18을 찬양하니 광주 5.18은 절대옳다





ps 현실에서도 볼프64같은 사람은 말도 안되는 궤변과 그럴듯한 논리를 함으로써



토론으로 붙었을때는(현실) 그럴듯한 논리때문에 상대방을 이길수있지만


내용 전문이 마우스 커서 내리는 걸로 훍어볼수있는데 인터넷에서는 여지없이 발린다.


왜냐하면 현실 실시간 토론에서는 생각하는 시간이 짧지만 인터넷에서는 많기때문이다.


생각할 시간이 1시간만 되더라도 이길수있는 것이다.


그러니 토론에서 발릴거 같으면 상대방에게 "주장 요지를 적어달라고 한 뒤에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다"고 부탁하자



만화가에게 간단한 팬레터 쓰는 법 팬레터


짤방이 짤려있다는 이미지를 클릭하여 확대하자






작가에게 보내는 팬레터는 문장력, 마음보다 구매인증이 더 중요하다

설마 그 만화 이름이



츄리링인가요

일본 만화가에게 팬레터를 보내보자 팬레터


나무위키 도둑뇌사 사건 항목에도 안나오는 사실










http://chuncheon.scourt.go.kr/dcboard/new/DcNewsViewAction.work?seqnum=16886&gubun=44&cbub_code=000260&scode_kname=%BF%EC%B8%AE%B9%FD%BF%F8%20%C1%D6%BF%E4%C6%C7%B0%E1&searchWord=%B5%B5%B5%CF&currentPage=0











제목 [형사] 주거침입한 도둑을 완전히 제압한 후에도 빨래건조대로 계속 내리쳐 사망하게 한 사건[서울고등법원(춘천) 2015노11]
작성자 춘천지방법원
작성일 2016.03.11
조회 6664
첨부파일 2015노11_판결문_검수완료.pdf  

정당방위에 해당하려면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라는 방위상황에 

직면하여 법익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를 한 경우로서 

그에 ‘상당한 이유’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사건은 주거에 침입한 도둑을 수회 때려 완전히 제압함으로써 

자신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일단 종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빨래건조대로 계속적으로 내리치거나 머리를 발로 밟는 등 

무차별 폭행을 가하여 사망하게 한 행위는 

방어의 의사를 넘어 공격의 의사가 지배적이었다고 볼 수 있고, 

사회윤리적으로도 상당성을 벗어난 것이므로 

정당방위가 성립될 수 없다고 보아, 

피고인에 대하여 상해치사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사안입니다.

요약

도망가려는 도둑을 때림

도둑이 기어서 도망가려하자

패죽임



나무위키 : 5.18 시민군은 교도소 공격안했다

나무위키 5.18 민주화운동/학살 항목

7.2. 교도소 지역 학살[편집]

광주시 외곽 도로망을 완전히 차단한 계엄군들은 시민들을 무차별로 학살했다.

광주교도소 부근은 광주-담양을 오가는 길목이었다. 그리고 3공수여단의 임무는 광주교도소 경계뿐만 아니라 남부 고속도로를 차단하는 것도 있었다. 당연히 많은 민간인들은 광주 밖으로 나가려했다. 그러나 3공수여단은 지나가지못하게 그 부근을 차단하고 민간인 학살을 여러번 벌였다.[61]

김성수 씨는 화물차를 운전하는 사람이었다. 사건 당시 고향인 진도로 가려고 아내와 딸을 데리고 시내를 벗어나려했다. 그러나 계엄군이 막았고 다시 북쪽에 있는 담양쪽을 나가려했으나 계엄군(3공수여단)이 막았다. 아내 김춘화씨는 울면서 보내달라고 사정했지만 거절했다. 계엄군은 '돌아가지 않으면 죽이겠다'총으로 위협까지했다. 김성수 씨는 어쩔 수 없이 아내와 딸을 차에 태웠고 돌아가려했다. 그런데 돌아가는 차를 향해 계엄군은 무차별로 싸댔다. 돌아가라 시켜서 돌아간건데 오히려 그 사람들을 무차별로 쏴댄것이다. 김성수 씨는 의식은 있었지만 아내와 딸은 혼수상태였다.

아내인 김춘화씨는 뇌수술을 세번이나 받고 정신이상증세까지 걸렸다. 나중에 차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딸 내향(당시 5살) 씨는 하반신 마비가 됐다. 출처 출처

그 외 교도소 주변은 민간인 학살이 여럿있었다.


「계엄군의 발포로 인해 가족과 함께 광주교도소 앞을 통과하던 차량, 아이들과 함께 광주를 떠나던 사람, 계엄군 주둔지역의 마을주민 등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3공수여단이 철수해 봉쇄작전을 수행했던 광주교도소 부근에서도 민간인 살상이 발생했다. 당시 3공수여단이 경계했던 광주교도소 부근은 광주-담양을 오가는 길목에 위치했다. 광주교도소는 민간인 학살이 빈번하게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불순분자들의 선동에 따른 폭도들의 습격을 격퇴한 것으로 설명됐다.


- 12․12, 5․17, 5․18사건 조사결과보고서, 94~95」


합수부는 이걸 '불순분자들의 선동에 따른 폭도들의 습격을 격퇴한 것'이라 날조했다. 그 내용을 따르면, 당시 광주교도소에 복역 중인 류락진의 동생 류영선과 처 신애덕이 시위에 가담했고, 그 시위대가 교도소를 습격해서 류덕진을 구출하게 선동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류영선은 교도소를 습격하다 총상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 1차: 광주교도소습격기도사건(보안사, 383-1989-8 ,89쪽) 2차: 12, 5.17, 5.18 국방부 보고서, 118쪽]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은 이 사건을 조사를 해봤는데 이게 조작이라는 밝혀냈다. 당시 신애덕은 합수부한테 예비검속 당한 딸 류소영을 찾고 있었다. 류영선은 5월 21일 전남도청 앞 발포 대 머리를 총에 관통당해 사망했다. 합수부는 '도청앞에서 죽은 시민이 교도소 습격했다'는 왜곡을 벌인 것이다.



12, 5.17, 5.18 국방부 보고서, 118쪽


이렇게 이미 진상규명이 완료됐는데 유사역사학 추종자들은 아직까지 시민들이 교도소 습격했다고 날조(혹은 아무런 증거도 없고 정황증거도 성립하지않는 유사학을 주장)한다. 이 세력들은 이러면서 ‘광주교도소가 광주-담양을 오가는 길목이라는 것’, ‘3공수여단은 남부 고속도로 차단일까지 맡았다는 것’은 절대 설명하지않는다.







(중략)




9. 증언들[편집]

일부 세력은 일방적으로 한쪽편만 들고 5.18을 평가한다, 좌편향이라고 주장한다. 이건 마치 박근혜 탄핵철회를 요구하며 태극기를 자랑스럽게 흔들어대는 극우파 세력을 보는 듯 하다.

하지만 사학계는 그렇게 편향되지도, 만만하지도 않다.

공수부대원들이 무차별 공격했다는 사실은 시위대의 편향된 주장이 아니라 제 3자들도 똑같이 증언하는 내용이다. 동아일보 김영택 기자가 취재한 내용에도 자세히 실려있다. 중앙일보 장재열[70]기자 역시 마찬가지로 같은 증언을 한다. 당시 공수부대원들은 차에서 내려서 자기 근처를 지나던 젊은이들을 ‘불문 곡직하고’ 마구 때려팼다고 한다. 그중 한 젊은이는 무등경기장 부근에 있는 광주교에서 다리 난간에 떨어질 때 까지 뚜들겨 맞았다. 당시 취재팀이 취재한 내용에는 ‘대검으로 찔러’, ‘여자, 팬티만 남기고 마구 때리고 폭행’, ‘도망가는 시위대에 칼 던져’같은 것들이 써있었다. [71] 같은 중앙일보 기자인 김충근 기자[72]도 마찬가지 증언을 한다. 김충근 기자는 7공수여단이 벌이는 짓들을 보고 ‘만행, 폭거, 무차별 공격’ 따위 표현들을 쓰려했으나 이같은 행위들을 표현하기에 적절하지못해 성이 차지 못했다. 그러다 떠올린 단어가 ‘인간 사냥’이다. 당시 7공수여단이 벌인 행위를 나타날 때 널리 퍼진 표현이 ‘인간 사냥’인데 보다시피 시위대가 말한 표현도 아니고, 파시스트들이 너무 좋아하는 홍어하고도 관련이 없다. 또한 여자들 옷을 찢어발긴다든지 여자들을 때리는 부위를 보고 ‘백주겁탈, 폭력난행, 성도착적 무력진압’이란 표현을 생각했다고 한다.[73]

참고로 당시 한국기자들은 시위대들한테 혐오를 받고 공격까지 당했다. 예로 ‘인간 사냥’이란 표현을 쓴 김충근 기자만 해도, 차를 타고 있는데 시위대한테 화염병 공격을 받아 차가 불에 휩싸인 적도 있다.[74] 그런데도 저런 증언을 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공수부대원조차도 그런 증언을 한다. 위에 본 이경남 씨 경우가 그렇다.

'공수부대원에 대한 이야기는 한쪽편만 듣고 생각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자체가 왜곡의 일종이다.

10. 상부의 명령이 없었는가?[편집]


공수부대들의 살육은 분명히 의도적인 행위였다. 가능한 한 많은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그와 같은 살육을 자행하고, 시민들이 이 광경을 보며 분노와 안타까움에 발을 구르면 더 신이 나서 해대는 것이었다.


- <오월의 사회과학> 최정운 저. p72.


위와 같은 주장에서 보듯, 최정운 교수는 <오월의 사회과학>에서 '공수부대의 특수한 훈련'에 포커스를 맞춤으로써 공수부대의 광적인 폭력은 상부의 지시나 명령에 의한 걸로 볼 수 없다고 주장을 했다. 그러나 강준만 교수는 최 교수의 주장에 대해 공수부대는 물론 군의 명령전달 방식에 대한 이해부족이라고 반박했다. 애시당초 충정훈련 자체가 신군부의 지시와 명령에 의한 것으로 비추어 보아 해당 표현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11. 공수부대가 학살을 하게 된 원인들[편집]

11.1. 충정훈련[편집]

충정훈련은 훈련자체 강도도 대단히 높았는데 그 훈련을 하는 시간도 1980 초반 이전보다 많아졌다. 훈련을 위해 부대에서 퇴근도, 영외 거주도, 외출 및 외박도 하지 못하게 했다. 80년 2월부터는 특전사는 다른 교육훈련은 포기하고 오직 충정훈련에만 여념이 없었다. 그러라고 있는 공수부대가 아닐텐데? 한 지역대는 폭도 역을 맡고, 다른 지역대는 방어하는 부대원을 맡아서 강도높은 훈련을 수없이 하였다.[75]


11.2. 해산 위주가 아닌 체포 위주[편집]

당시 공수부대들의 진압목적은 해산이 아니라 체포였다고 11공수여단 하사는 증언했고 실제 2군사령관의 강조사항에서 '소요자는 최후의 1인까지 추격하여 타격 및 체포'하도록 지시했다.[76]


11.3. 시위자들을 불순분자라 판단[편집]

당시 상층부는 시위를 '불순분자의 소행'이라 인식했고, 현장에서 진압을 하던 공수부대원들 역시 시위를 '불순분자의 소행'이라 생각했다. [77] 거기에 충정훈련 중 병행된 정신교육에서조차 "시위 군중의 배후에는 빨갱이가 도사리고 있다.단호하고 무자비하게 때리고 짓밟아야 한다."는 식이었다.


11.4. 개판인 지휘와 군기[편집]


5.18 민주화운동에서 계엄군들이 저지른 만행과 추태들은 군사정권 하에서의 대한민국 국군(심지어 특수부대라는 공수특전단조차)의 처참하기 짝이 없는 질적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반증 이라고 볼 수 있다. 무차별 민간인 학살이라는 중범죄를 제외하고도, 이 당시의 계엄군은 정예군, 아니 하다못해 정상적인 국가의 정규군은 커녕 제3세계 반군만도 못한 수준의 여러 한심한 행동들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5.18 기간 동안 내내 수하나 신원 확인을 제대로 하려는 척도 안하고 그냥 눈 앞에 사람이 보이면 무장이던 비무장이던 무조건 쏘거나 폭행을 가했기 때문이다.

5월 19일 광주고 앞에서 발포가 이뤄졌는데도 전교사나 31사단은 상황보고를 받지못하고 사실조차 파악못했다. 20일엔 광주역 앞에서 3공수여단이 총을 쐈고, 2군사령부는 실탄통제를 지시했다. 그러나 공수부대에는 전달되지않았고, 이 지시가 내려간 뒤에도 11공수여단에는 실탄이 분배됐다. 공수여단은 5월 20일 밤과 21일 아침에 중대장급은 간부들한테 실탄을 분배했다. 당시 공수부대는 실탄분배나 발포같은 사실을 도청발포전까지 상급부대한테 허가를 받지 않았다. [78] 그리고 5월 24일 하루에만 계엄군끼리 벌인 아군사격이 두번이나 일어났다. [79] 5월 24일 원제마을 인근에서 발생한 아군간 사격에 대한 분풀이를 하겠다면서, 가까운 원제마을, 진월마을로 내려가 주민들에게 총을 발포했다. 이 때 도로변에 있는 주택들을 일일이 찾아가 주민들에게 총을 발사했다. 또한 인근 저수지에선 물놀이하던 초등학생이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화풀이 학살 이후엔 도로에 머무르면서 해당 도로를 지나가던 모든 차량들에게 무차별로 총알을 난사했다.

전교사의 전투상보에선, 연락장교 능력이 부족하고 임무가 미숙해서 정확한 상황전파를 실시 못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전교사는 18:49에 확인사격 지시를 내렸는데 수하 불응시 사격하라는 지시였다. 그러나 수하자체가 없는 학살이 여러번 일어났다. [80]

또한 공수부대원들이 술을 마시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것은 시민들은 물론 군인들까지 증언하는 내용이다.[81] 공수부대 장병들이 술을 마신 이유에 대해선 증언이 엇갈리는데, 일시적으로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막걸리 등을 대신 마셨다는 주장과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게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술을 배급했다는 주장[82] 등이 있다.

또한 여기에는 장병 개개인의 피로와 스트레스도 작용했다. 위에 언급한 강도 높은 충정훈련 진행, 부대의 장거리 이동, 그리고 제대로 지휘가 되지 않는 상황으로 인한 식사와 휴식의 부실함 등으로 인해 장병들의 피로와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이것이 시위대에 대한 불순분자라는 인식과 지역 혐오 등과 겹쳐서 말 그대로의 화풀이와 증오로 인한 폭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11.5. 지역혐오[편집]

당시 공수부대원들은 위에 같은 잔인한 공격을 하면서 '전라도놈들 다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외쳤다. 시민들은 자극을 받고 공포에 떨었다.
이러한 지역차별적인 발언에 대해 항의하는 시민의 모습이 담긴 영상도 남아있다. 링크영상 2:55초 부터 "전라도놈 30만명 죽여버린다고 했다."며 "어디 그런소릴 하냐"고 항의 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건 당시 계엄군 내부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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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당시 현장에 있던 공수부대원, 11 공수여단 63대대 이경남 씨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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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여기서 주어를 보라. '11공수단', '어떤 군인들'이라고 지칭한다. 한, 두명이 외친 것이 아니다.

박정희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곳이 호남지방이었다. 예로 71년 대선 당시 중앙정보부는 영남지방에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흑색선전물을 뿌려대는 등 지역감정을 조장한바 있다.[85] 그리고 지역 차별이 가장 심했던 곳이 바로 군대 였다. 당장 하나회가 대부분 영남 출신들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86], 장교들의 진급에서부터 사병들의 내무반에 이르기까지 공공연히 호남차별이 이루어졌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자연스레 호남의 심장부인 광주에서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결과 위에서 언급한 다른 요인들과 맞물려 공수부대의 진압이 '충정작전의 교범'을 벗어나는 만행의 심리적 원인중 하나라고 할수 있다.[87]

당시 23세의 청년이던 이선 씨도 아래와 같이 증언하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들은 '미움받는 백성, 한 많은 백성 전라도 사람'들을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개돼지로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도망가는 사람의 등 뒤에서 착검한 총을 휘둘렀고, 잡은 사람을 때릴 때도 얼굴과 머리를 주로 때렸다.


이선 씨의 증언. 한국현대사사료연구원 편, 광주민중항쟁사료전집, 1112」


하지만 이는 일부 지휘관들의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당시 광주에서 공수부대원들의 과잉 진압이 분명했음을 알려주는 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까지 무차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인간이 아니거나 적어도 이민족 개념을 가졌으니 저렇게 할거라고 보았고 거기에 경상도 군인만 왔다는 소문이 당연하게 퍼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같은 인간으로써 악한 감정을 갖지 않고서 광주 시민들에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적어도 광주에 온 공수부대원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12. 결론[편집]


시위 진압이라는 원래 목표부터 진작에 내팽개친, 인두겁을 뒤집어 쓴 짐승놈들의 무차별 학살극

신군부가 광주학살을 일부러 일으켰는지, 예상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일어난건지, 혹은 직접적으로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학살이 일어나게 방조한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당시 신군부는 공수부대원들한테 힘겨운 충정훈련을 주며 제대로 쉬지도 못하게해 공수부대원들을 정신적으로 미치게 만들고 시위와 학생들한테 혐오를 갖게 만들면서, 군기도 엉망이였다. 그런 상태에서 해산이 아닌 체포위주로 진압을 하게함으로서 최소한의 제한조차 사라진 상태였기에 이런 학살이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김영택 씨처럼 '신군부가 처음부터 일부러 광주를 노리고 했다'는 가설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정해구씨를 비롯해 [88] 보통은 신군부 세력의 과잉대응으로 주장하고 있다. 신군부의 의도적인 만행이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5월 27일 도청진압 작전을 수행한 소준열(1931~2004) 전투병과교육사령관이 공수부대의 과잉 진압을 나무라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소준열에게 공수부대의 사기를 죽이지 말라며 항의 편지를 보낸 것이다.

당시 전라남도 경찰국 국장 안병하 씨는 공수부대들이 시민들을 폭력으로 진압하는 와중에도 진압 경찰들에게 무력진압을 하지 말아달라고 명령했다가 5.18 직후에 신군부에 의해 동빙고 분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이후 '자진사직' 조건으로 풀려났는데 이를 보면 그때 경찰 라인도 신군부에 의한 과잉 진압 지시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고 신군부는 치안력보다는 군사력을 동원하여 시국을 수습하려고 했다고 보면 하급 지휘관들의 충성심의 발로와 무관하게 신군부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으로써 이승만 부정선거, 박정희 유신독재처럼, 전두환 정권은 이어지는 노태우 정권까지 5.18 민주화운동으로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예가 되었다.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강한 정치적 성향의 투사 혹은 폭도로 구분하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가 내포된 것일 뿐이고 바로 옆에서 같은 시민이 무자비한 폭력에 희생되는 것을 보고 울분을 느낀 평범한 인간으로써 상식을 벗어난 폭력집단에게 내 가족 내 이웃을 지키자는 가장 기본적이고 정의에 충실한 보편적인 국민들이었다.

한편 계엄군 장병 개개인들의 책임에 대해선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장병 개개인이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들을 폭력으로 내몬 전두환과 군 상층부에게 더 큰 책임을 돌려야 하며 장병들 또한 또다른 피해자라는 주장과, 단순히 상부의 명령이라고 하기엔 5.18 당시 내보인 증오와 폭력 행위에 대해선 개개인에게도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대립하고 있다. 극단적으로는 전두환부터 시작해서 당시 진압군 장병들까지 전원 사형을 시켜야한다는 의견도 있다.[89]

또한 PTSD에 시달리는거와는 별개로 아직도 저당시 지휘관이나 일선 장병들은 "명령대로 한거뿐이다. 그러므로 난 무죄야.", "명령대로 안하면 내가 죽게생겼는데 뭐 어쩌라고? 살려면 전부 죽여야지.", 더 못죽인게 아쉽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부류도 상당수 있다.



(중략)




피해자들의 분노를 잘 보여주는 기사다.

황석영의 책에 따르면 다음과 증언도 있다고 한다.



「어느 할아버지는 '저럴 수가 있는냐. 나는 일제 때에도 무서운 순사들도 많이 보고, 6.25 때 공산당도 겪었지만 저렇게 잔인하게 죽이는 놈들은 처음 보았다. 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저러는가. 죄가 있다고 해도 저럴 수 없다. 저놈들은 국군이 아니라 사람의 탈을 쓴 악귀들이야' 하면서 통곡했다. 어느 중년의 사내는 '나는 월남전도 참전해서 베트콩도 죽여봤지만, 저런 식으로 죽일 바엔 그냥 총으로 쏴 죽이지. 저놈들을 죽여버려야 해' 하면서 오열을 터뜨렸다. 온 거리는 피의 강, 울음의 바다가 되었다.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51」









〈광주교도소의 방어부분과 관련한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의 점에 대하여〉

원심은 3공수여단 11대대 병력이 1980.5.21.부터 같은달 23.까지 광주교도소의 방어임무를 수행하던 중 무장 시위대로부터 전후 5차례에 걸쳐 공격을 받았는데,같은 달 22.00:40경에는 차량 6대에 분승하여 광주교도소로

접근하여 오는 무장 시위대와 교전하고, 같은 날 09:00경에는 2.5 군용트럭에 엘엠지(LMG)기관총을 탑재한 상태에서 광주교도소 정문 방향으로 접근하면서 총격을 가하여 오는 무장시위대에 응사하는 등 2차례의 교전과정에서 서종덕.

이명진.이용충을 각 사망하게 한 사실,당시 광주교도소는 간첩을 포함한 재소자 약 2천7백명이 수용된 주요 국가보안시설이었던 사실 등을 인정한 다음,첫째로 다수의 재소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광주교도소에 무장한 시위대들이 접근하여 그곳을

 방어하는 계엄군을 공격하는 행위는 불법한 공격행위라 할 것이며,둘째로 피고인 전두환.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허화평.허삼수.이학봉.이희성.주영복.정호용이 쿠데타에 의하여 군의 지휘권과 정권을 불법으로 장악하였다 하더라도 위와

같은 불법한 공격을 감행하는 무장 시위대로부터 교도소와 같은 주요 국가보안시설을 방어하기 위하여 계엄군으로 하여금 총격전을 벌여 시위대를 저지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정부 또는 합법적인 정부가 당연히 취하였으리라고 생각되는 그러한 조

치를 수행한 것으로서 그 범위 내에서는 정당행위라 할 것이므로 이 부분에 대하여 위 피고인들을 내란죄로 처벌할 수 없고,또한 내란목적살인죄는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인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인데 계엄군의 위와 같은 살해행위

에 대하여 피고인 전두환.황영시.이희성.주영복.정호용에게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위 피고인들을 내란목적살인죄로 처벌할 수도 없다고 판단하였는바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간다.


[출처: 중앙일보] 12.12 5.18 비자금사건 판결문 - 5.18 내란등 사건 부분

일본 만화에서 노알라(故 노무현 대통령 희화화) 나와서 화제 태권더 박



노무현 전 대통령 희화화 캐릭터 노알라.

수많은 방송사고를 일으켜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 만화 태권더 박 21화에 대놓고 나와서 화제가 되었다.




이것은 합성이 아닌 진짜이다

http://tv.kakao.com/v/376249302




노알라나오는 태권더 박 21화 감상 태권더 박







일베와 루리웹에도 퍼가라

이게 무슨 의미죠?




6. 연역적인 지식은 필요없고 귀납적인 트랜드 파악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미친놈을 봤다. 심지어 이런 이유로 앞으로 경제학자들은 사회의 현상을 통해서 경제 이론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하던데.. 그 논리면 의사가 왜 필요할까? 환자들의 여러 증상과 경험으로 약을 지어주면 되는게 아닌가? 아닌말로 내가 기침이 심해져서 약먹고 일주일만에 나았지만 백부님은 2년전에 기침이 심해져서 지내다가 "폐암" 판정받고 돌아가셨는데.. 귀납적인 방식으로 연구했다면 나나 백부님이나 같은건데? 의학과 경제학이 다르지만 왜 사람들은 아무 이야기가 그렇게 함부로 하는지 모르겠다. 글구보니 임상적인 귀납 요법으로 의학을 재단하는게 종편의 그 많은 프로들 아닌가?

광복절날 일본문화를 자제한다는거 반일오덕 심리






정말로 문화와 정치를 별개라고 본다면

광복절날 일본옷을 입었다거나 일본옷을 발매했다고 비난하진 않겠지


평소에는 말도 안되는 날조로 일본을 적대시하고 증오하면서도 일본문화가 매력이 있다보니

 '성숙한 시민이라면 문화랑 정치는 별개Nida' 지껄이면서 일본문화를 누려왔지만

국뽕(99.9%의 한국인)이라면 필연 마음속으로는 꺼림직한 것이 쌓이는데

그걸 속죄하고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것이 바로 광복절 왜색시비지



반일오덕이 일본게임 애니를 빨면서 마음속에 쌓인 죄책감을

주기적인 우익애니 타령과 일본에 대한 비하로(원폭피해자 조롱 혹은 헬본타령) 풀듯이

'일본문화를 누리지만 나는 자랑스런 한민족으로서 역사에 관해 지킬 것은 지키는 참 한국인Nida' 하는 것과 동일하다



평소에는 돈카츠, 스시, 라멘, 일본과자, 호로요이, 일본여행, 일본옷 캐쉬템 을 사대면서 광복절날만

'Aigo!!!!!!뭐하는 짓인 Nikaaaaaaa!!!!!!'

한마디만 하면 바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받는 것



이는 마치 종교적 행사와 같다

평소에 일상생활하면서 신앙과 신에게 소홀히하고 율법을 어겨왔지만.

특별한 날에 속죄의식을 하면서 다시 영적으로 용서받는 것..

이미 반일교는 그 교리와 종교의식마저 모두 정립된 성숙한 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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